Make or Break
만약에 해야될 말이 농담이라면 뭐 좀 천천히 생각해서 말해도 되니까 맞받아칠 말을 미리 머릿속에 준비해둬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게 논쟁, 아니면 그냥 막말로 얘기해서 싸울때 필요한 말이라면 언제나 경우에 따라 다른 대답들을 미리 잘 준비해서 머릿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둬야만 해요. 마치 싸움이 시작되면 먼저 바로 찌를 수 있도록 날을 잘 벼른 칼 몇자루를 품 속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게 우리 말이 아니라면 그래야 된다는 얘기죠. 언제나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요즘은 계속해서 완전 전투모드에요. 일단 어느 누구도 뭘 어디까지 해야 된다고 정해주지 않는 open end 환경의 작업 속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정 수준 이상의 목표를 정해서 계속 가야만 하는 것은 저와의 싸움이고, 또 바깥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각종 방해공작의 우박 속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서 주눅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외부 내지는 타인과의 싸움이겠죠.
올해는, 현실적으로 반드시 실행할 수 있는 서너가지의 목표를 세워 놓고서는, 그 첫 번째를 지난 몇 년 간 구겨졌던 것들을 마지막으로 펴는 것으로 못박아 두었어요. 어느덧 많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 화룡점정의 단계로서 거쳐야 할 관문이 남은 것이죠. 벌써 올해의 첫 달을 뒤로 한 지금, 한 번에 다수의 적이 눈에 들어오는 이 긴장상황이 그렇게 쉽게 소강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지는 않네요.
여태껏 그랬죠, 그냥 이건 네가 모자라서 그러는거야-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저 별 다른 생각없이 아, 그래 내가 모자라서 이렇구나, 그러니까 모든게 나의 잘못이니까 내가 똑바로 하면 이 세상에 평화라는 것도 찾아올 수 있겠구나…라고 참으로 군말없이 반성도 하고 자아비판도 하고 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화 푸세요, 앞으로 잘 할께요… 도 막힘없이 술술 말해왔었는데, 백 가지면 적어도 일흔 다섯가지를 어떻게든 바로 잡아 놓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가 잘못한 일들에 대한 목록은 또 다른 백 가지를 담아 갱신되어 제 앞에 들이밀어지는 것을 몇 년간 보고서는, 대단히 죄송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저 하나라는 미약한 존재가 그 큰 무리의 평화를 좌지우지할만큼 엄청난 존재도 아닌데 대체 이렇게 난리를 떨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고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너무나 뻔한 일일지도 모르는 상황 또는 현상에 대한 의심을 마치 다 죽어가는 암탉이 3년 단란끝에 낳은 알 하나를 무정란인지도 모르고 20주 동안이나 품어오듯 소중하게 품고 있다보니 아, 이제는 길 가다 맞아 죽어도 좋으니까 내 하고 싶은 얘기만큼은 하고 살아야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죠. 내가 뭐 백 오십년이라도 살면 또 모를까, 세 자리씩 산다고 해도 그 말년에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마치 나 하나가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네, 결과는 저도 몰라요. 서른 넘게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아주 강하게 밀어 붙여보지 못해왔던 이런 시도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뭐 그러나, 아무렴 어쩌겠어요. 어차피 홀홀단신… 누구누구처럼 애들이 집에서 빤히 쳐다보는 아빠도 아니고, 이 길이 아니면 내 삶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위인도 아니고… 또라이 취급을 받아도 좋고 뭐 건축이라는 거 안 해도 좋고 다 좋은데, 적어도 지금의 나로 딱 한 번 밖에 못 사는 이 삶을 살 정도 능력은 가지고 있는 사람 취급은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 그렇게 칼을 갈듯 말들을 벼리고 있는 요즘이에요. 어떻게는 되겠죠. 그러니까, 언젠가는.
# by bluexmas | 2008/02/05 12:18 | Life | 트랙백 | 덧글(4)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님: 건축을 하시는 분이라니 반갑습니다. 보시다시피 건축에 대한 글은 쓰기 힘들어서 거의 안 올리다시피 해요. 제가 지금 겪는 문제는 동양인이고, 또 건축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 문제를 떠나서 어떤 상황에서나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여간 잘 풀어나가야죠. 비공개님도 잘 풀어나가셨으면 좋겠어요(자주 들러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