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perately
두바이 지사로 지난 몇 주간 했던 일들을 다 보내고 난 뒤, 우리는 갑자기 일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오전엔 간만에 여유있는 거지의 마음으로 책상을 정리하고 구걸해온 커피를 마시다가, 오후엔 의자를 점검하러 현장에 나갔다. 이제 나는 의자점검의 신이 되어서 500개를 50분 만에 점검할 수 있다. 의자를 점검하는데에는 적어도 20가지 정도의 점검항목이 필요하고, 설치된 의자에 그 20가지 가운데 하나의 결함이 발견되면 그걸 도면에 표시해서 시공업체로 하여금 점검하도록 한다.
두 시간동안 천 개 정도의 의자를 점검하고는 일정도 빡빡하다던데 250개 정도만 더 하고 갈까, 라고 생각을 하는데 두 번째 구역 맨 윗쪽 의자를 고정한 볼트 어디엔가 손가락을 베인다, 그것도 생각보다는 깊게… 먼지가 잔뜩 묻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피를 보니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보통 반나절에 사람들이 점검할 수 있는 의자는 두 구역 분, 천 개이다. 나는 이제 꽤나 오랫동안 이 일을 해서 좀 더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할까 생각했던 건데, 피를 봐가면서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퇴근.
팔다리도 뻐근하니 집에 그냥 갈까… 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체육관에 들른다. 일단 뛴다. 뛰어보면 안다, 내가 지금 어떤 몸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체육관에 안 들른지가 벌써 얼마였더라? 나의 몸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려한다. 더 열심히 뛴다. 시계가 정해진 시간을 끝으로 달려갈 때쯤, 부족했던 무엇인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리는 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의 절반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는 체육관을 나선다. 땡볕에 세워놓은 차에 시동을 거니 온도계가 화씨 106도… 이게 섭씨로 대체 몇도야? 이상하게도 올해 여름은 내가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는 동안에 찾아왔다는 기분이다. 이 동네에 사는게 이제 8년째인데 올해는 정말 맞을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싸대기를 맞는 듯한 기분이다. 아무래도 피하다가는 더 맞을 것 같아서 일단 계속 맞아주기로 했지만 이젠 그럴 시기도 지났다. 나는 이쯤에서 반격을 가해야만 한다. 정말 필사적으로…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무슨 맛인지 상관없이 밥을 기계적으로 먹는다. 반쯤 먹고 나니 그제서야 지금 먹고있는게 밥이고 국이며 반찬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다 먹고 나니 이건 현미밥이었고, 저건 미역국이었으며, 또 얘는 열무김치였구나, 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 저녁 식사는 끝이 났다. 이제 여름의 시작인데 나는 한참동안 눈 못뜨는 갓난 강아지처럼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아마 한 일주일만 더 이렇게 살면 그땐 정말 나에게 참을 수 없을만큼 짜증이 날 것 같기 때문에 이번주를 기점으로 나는 비틀거리고 있는 배의 방향을 돌려야만 한다. 여기는 당분간 내가 살 수 있는 세계의 끝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는 삶 자체에 짜증을 느끼면 나는 이 세계에서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정말 필사적으로 배를 돌리고 물길을 돌리고 차를 돌리다 못해 나를 돌린다… 내 삶은 적어도 당분간은 여기에 고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꽤나 오랫동안 넋이 나간 것 같은 느낌으로 헤매고 있었다. 그렇다고 환상을 심어주고 떠난 사람들을 원망할 수는 없다. 결국 그것들이 자라나도록 내버려둔 건 나였으니까.
덥다.
# by bluexmas | 2008/06/10 12:07 | Life | 트랙백 | 덧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