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월요일
스산해서 행복했던 주말에서 눅눅해서 짜증나는 일요일 밤을 거쳐 월요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그저 몇 번의 비바람이면 충분했다. 공기는 털끝으로 느낄 수 있을만큼 무거워졌고, 나뭇잎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으며, 나는 짜증에 불타올랐으나 그렇게 순식간에 짜증을 내는 자신의 변덕스러움이 싫어서 계속 참아댔다. 시간이 일요일 자정을 지나 월요일 새벽으로 접어들자 정말 짓누르는 것처럼 공기가 무거워졌지만 기온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냉방을 틀 수도 없었다. 결국 네 시에 잠들어 여덟시에 일어났다. 도로가 막히지 않은 것은 정말 이 내외부가 완벽하게 일치해서 벌어지는 아수라장 가운데에서의 유일한 은총이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켰는데 이메일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주인을 뱉어내기만 한다. 잠이 모자라서 아픈 머리는 꼭 목뼈가 두개골과 연결되는 부분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 두개골을 뚫고 올라온 느낌마냥 날카로왔다. 꼬리뼈가 자란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목뼈가 자라다니 이건 대체…짜증은 단어였고 공기였고 생명이었고 믿음 소망 사랑이었다. 나는 소망반이었지… 선생님 이름도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생각에 담다가는 다들 그것까지 기억하는 걸 보니 확실히 미친 모양이라고 말할까봐 거기에서 생각을 억지로 끊었다. 창 밖의 세상은 뿌였게 흐려있었고 선생님의 성은 전씨였다.
금요일에 억지로 끊은 일은 하루 종일 아주 무겁게 나를 괴롭혔다. 끝이 없이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나니 여섯시 십 분이었는데 J가 뭔가를 내밀더니 이걸 좀 마저 끝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보다 이틀 일찍 휴가를 떠나는 K가 팽게치고 간 일이었다. 얼마든지! 라고 시원하게 대답은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Due Diligence였다. 그러고보니 어차피 한 시간 늦게 오기도 했다. 하루종일 포토삽질은 지겹고 또 지겨웠다. 1초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오늘은 꼭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잡지의 구독신청을 해야만했다. 요즘은 전화도 잘 못하는데, 할 때마다 눈치보시면서 물어보시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내가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보내신 편지-얘, 혼자 객지 생활에 얼마나 외롭니-로 시작하는 그 편지에 아버지의 계좌정보가 있었지만 정신이 너무 없어 편지를 찾을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구독관리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계좌정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직원을 때릴 기세로 아버지의 계좌정보를 찾게 만들었다. 하면 분명히 되는 것 알고 있는데 안 된다고 말하는 꼴을 보면 가끔 참을 수가 없어진다. 이주일도 넘게 미뤄왔던 일을 10분만에 끝내고 다시 일을 한다. 일곱시 반이 조금 못 되어 사무실을 나서는데 눅눅한 공기를 뚫고 눅눅한 비가 내린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러야 될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배가 찢어지게 고팠다. 이게 다 충전기 탓이다. 카메라에 쓰는 충전기와 그에 딸린 충전기가 있는데, 그게 110V 전용인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원하는 걸 찾고 백화점에 잠시 들렀는데 망한 백화점에 딸린 주차장에 꼬마놀이공원이 들어선 줄은 모르고 있었다. 비가 안개처럼 뿌옇게 내리는 밤, 놀이기구에서 나오는 빛이 환하지만 오히려 어둠보다 더 쓸쓸해보인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모두 다 쓸쓸한 척해도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않는데, 오히려 이런 날 안 쓸쓸한 척 하는게 더 쓸쓸해보인다는 사실을 저 놀이기구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봐야 오늘 밤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을… 비오는 날 오히려 진한 메이크업에 위로 화려하게 올린 머리, 그리고 짧은 치마에 검투사 샌달을 신은 금발 미녀는 글쎄, 모르긴 몰라도 어젯밤에 겪었던 슬픈 사건사고를 감추고 싶어서 그런 차림을 했을지 몰라도 오히려 그게 더 그녀를 슬프고 쓸쓸하게 보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를지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급하게 차를 몬다. 배는 벌써 찢어져 양수가 흐르는 것 같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언덕을 파란 신호등불에 의지해 내려오는데 충전기를 사기 위해 들렀던 가게에서 들었던 노래는 너무나도 낯익지만 살짝 써먹어도 용서받을만한 그런 곡이었다. 이해해주세요, 어차피 새로움이라고는 깎고 겨우 3일 자란 손톱 밑에도 깃들어있지 않은 사람이 저라서요.
# by bluexmas | 2008/08/26 14:31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