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ves / Kingdom of Rust (2009), 그 세계로 돌아온 비둘기들

지난 번에 오지은의 두 번째 앨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장황하게 소포모어 징크스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브스에게는 소포모어 징크스가 남 얘기였다. 이들의 두 번째 앨범 ‘The Last Broadcast’는 첫 번째 앨범 ‘Lost Souls’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뛰어난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것일텐데, 나는 왜 불행을 들먹이는 걸까? 그건, 그 두 번째 앨범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 낼 앨범들이 그 앨범을 잣대로 계속해서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었고, 조금 뜸을 들였다가 내었던 세 번째 앨범 ‘Some Cities’가 확실히 전작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교는 그 두 앨범 사이에만 끝나지 않을 것이고.

다시 처음 두 앨범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하자면, 첫 번째 앨범에서 두 번째 앨범으로 넘어가면서 밴드는 엄청나게 발전된 편곡 능력을 선보였다. 가져다 붙이기 좋아하는 매체에서 이들의 음악에 ‘시네마틱 락’ 의 딱지를 붙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 사이에 존재할 법한 소리의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온갖 샘플링이며 효과음(둘이 결국 같은 것인가? 효과음은 음계가 없는 그냥 ‘소리’ 로 생각하는데), 그리고 다른 부가 악기들은 이들의 음악에 보다 극적인 요소를 더하는데 일조했다. 거기에 두 번째 앨범에서 더 나아진 작곡력은 한데 맞물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앨범을 지난 십 년간 내가 들었던 가장 좋았던 앨범들 가운데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앨범을 연달아서 들으면, 기본적인 기타-베이스-드럼의 구성에서 더해진 소리들이 이들의 음악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드는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앨범에서 좋았던 곡들-Cedar Room이나 Catch the Sun, 물론 다른 곡들도 훌륭했지만-은 사실 악기 구성의 측면에서 굉장히 단순한 편이었으니까.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 번째 앨범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Black and White Town’ 이나 ‘Some Cities’는 물론 ‘Snowden’ 도 좋았고, ‘ ‘Walk in the Fire’ 와 같이 두 번째 앨범의 곡들과 거의 맞먹는 극적인 느낌을 가진 곡도 있기는 했지만, 작곡과 편곡 모두 두 번째 앨범보다 함량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앨범과 같은 수준의 앨범을 만들거라거나, 단순히 그 앨범을 그대로 답습하는 앨범을 냈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첫 번째나 두 번째 앨범의 곡들이 각자 다른 얼굴의 사람이라거나, 혹은 서로 다른 표정을 한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면, 세 번째 앨범은 이상하게도 그냥 한 사람의 한 가지 표정이나 얼굴처럼 느껴졌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곡들 외의 다른 곡들은 함량 미달이라는 느낌마저 있었다.

밴드도 정확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번째 앨범은 꽤나 뜸을 들인 후 세상에 공개되었다. 4월 첫째 주에 발표된 ‘Kingdom of Rust’는 세 번째 앨범 이후 거의 정확히 4년 만이다. 나는 이번 앨범에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건 사실 두 번째 앨범과 맞먹을 수준의 음악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세 번째 앨범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들을 듣고 싶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밴드가 네 번째 앨범을 내어놓으면 갈림길에 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곡이든 편곡이든, 창작력이 딸린다면 네 번째 앨범 정도에서 밴드의 밑천이 말라버리니까. 물론 창작력의 측면에서 부침을 겪다가 시간이 흐른 뒤 나아진 결과물을 들고 다시 돌아오는 밴드들도 많기는 하지만, 일단 요즘과 같은 시장에서 적어도 중간은 가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지원이 끊기고 그러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음악을 들을 기회를 빼앗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음악 얘기를 하자면, 길어진 기다림 끝에 드문드문 들렀던 밴드의 홈페이지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오고 첫 싱글 ‘Jetstream’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굉장히 낙관적인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곡도 곡이지만, 세 번째 앨범에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조금 주춤했다고 생각했던 도브스만의 복잡한 편곡이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선가 영화’ 러너 블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라고 했던가? Jetstream은 아련한 회색빛이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드럼, 특히나 심벌이나 하이햇의 소리가 두드-곡의 표정을 살리는데 다른 드럼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러지는데, 플랜져가 걸린 하이햇 소리가 그런 아련함의 바탕을 깔고, 그 위에 켜켜의 샘플링이며 효과음이 쌓인다. 그리고 거기에 이런 분위기를 살리는데 더 알맞는 드럼 Jimi Goodwin의 보컬이 하나의 색깔을 완성한다.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물론, 모든 노래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감상을 얘기하기엔 나도 능력이 없고, 또 혹시라도 읽게 될 사람도 지루할테니 그건 건너 뛰고 전체적인 느낌을 얘기하자면, 지난 앨범에서와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각각의 곡들에 표정이 분명히 살아있다. 대체 음악에 표정이라니, 무슨 얘기나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앨범을 듣는데 한 두 곡 좋은 노래들을 빼놓은 나머지는 듣나 마나한 것 같은 노래들로 가득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모든 노래들이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라면, 그런 앨범들은 바로 이 도브스의 새 앨범과 정확하게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면 좀 말이 되려나? 어쨌든 하나하나의 곡들은 모두 다른 느낌으로 들리고, 들으면 들을 수록 위에서 켜켜이 쌓인 다른 소리들은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 그랬었는지 들은 기억이 날듯 말듯 하지만, 이들의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감정이 ‘애수’ 라면, 이 앨범에는 그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다.  ‘Pounding’이나 ‘ There goes the fear’ 등등의 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약간 입자가 거친 필름에 조금은 흐릿하게 찍은 영상의 느낌이 앨범을 들고 있노라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 앨범, 훌륭하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 앨범에는 정말 ‘음악’ 이 들었다.

기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

1. 도브스를 좋아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두 번째 앨범과 앞으로의 앨범을 비교하는 건 억울한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나도 적극 동감한다. 듣고 또 쓰면서, 의식적으로 두 번째 앨범과 비교하지 않으려 애써야만 했다.

2. 세 번째 앨범을 내고 미국 투어를 했던 이들의 공연을 그 때 살던 동네에서 보았다. 실제 연주는, 만족은 할 수 있지만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운데 일단 그 많은 소리들을 제대로 재현할 만큼의 장비나 인원이 없었다. 멤버 셋에 달랑 키보드 하나 더… 물론 미국 투어를 여러명 데리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서였겠지만… 그래서 전체적인 소리가 좀 썰렁하고, Andy Williams는 아주 뛰어난 공연 보컬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3. 알려진 것처럼, 이들의 기원이 Sub Sub라는 댄스(?) 밴드라던데 궁금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뭐 그렇게 기대한 것처럼 좋지 않을테니 관심 안 가져도 좋을거라는, 들어본 사람들의 말이…

 by bluexmas | 2009/05/30 15:47 | Music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Heima at 2009/05/30 18:23 

저는 DOVES를 jetstream이랑 kingdom of rust로 처음 접했거든요. 가장 좋은 평을 듣는 음반이 last broadcast인가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30 19:39

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번 앨범이 좋으시다면 꼭 Last Broadcast앨범을 들어보세요. 더 좋아하실거에요^^

 Commented by starla at 2009/06/01 00:32 

아, 이 앨범 들을수록 괜찮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애수’랄까 아무튼 그런 감정적인 면에서 가장 풍부한 것 같아요. 오늘 어떤 소설을 읽다가 ‘표정이 빈곤하여 아쉬운’ 어쩌고 하는 표현을 보고 bluexmas 님 이 글이 생각나더라고요. 얘네 노래는 의외로(?) 사운드가 희박한 듯하면서도 사실 꽉 차 있어서 시끄러운 교통수단 안에서 듣기에 정말 괜찮을 듯… 기대 중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01 09:40

언제나 도브스의 감성은 애수였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앨범의 Firesuite과 Here it comes 부터 그랬죠. 이번 앨범은 10:03 이나 the greatest denier같은 곡들이 좋더라구요. 들어보면 얼마나 많은 소리를 구겨 넣었는지 들을때마다 다른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