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삼청동
대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1999년이었구나. 딱 10년 전이네. 분명히 그 때는 정말로 기무사가 쓰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그 부지에 미술관을 설계하는 것이 과제여서, 그 동네를 참 많이도 갔었다. 그래도 어디에서 주워 들은 건 있어가지고, 건물을 설계하려면 부지를, 자주 가서 ‘읽어’ 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진짜 딱 10년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부지와 주변 상황에 맞을만한 해법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나는 깡통같은 건물을 들어앉힘으로써 보기 좋게 실패했었다. 내가 언제나 설계를 너무 잘 한다고 부러워했던 친구가 내가 지금 생각하기에 바른 해법이라고 믿고 있는 방법으로 설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각설하고, 마지막으로 갔던 게 2000년 정도였으니 정말 오랜만에 삼청동에 가 보았다. 늘 텅빈 테헤란로를 싸돌아다니는 게 지겨워져서일부러 기차(주말엔 편도가 무려 3,600원)를 타고 강을 건너 갔던 걸음이었는데, 뭐 정동진이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라도 이름이 알려지는 동네가 망가지는 것처럼 그렇게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찝어내가며 생각하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또 너무 덩어리져 있어 갈라놓기도 싫으니, 그냥 사진을 한 장 올리자. 내가 느낀 삼청동에 대한, 아니면 온갖 다른 어느 망가지는 동네에 대한 인상이 바로 저 한 장의 사진에 축약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타임’ 지에 ‘유기농’ 에 ‘핸드메이드’에 ‘츄라이’ 까지, 남들이 팔린다는 건 우리 것이고 외국 것이고 말이고 글이고 음식이고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쳐덕쳐덕 가져다 붙이면, 바로 저런 말도 안 되는, 무슨 초잡종 오염괴수 같이 앞도 뒤도 모르는 이상한 게 나오고, 그게 곧 삼청동 같은 동네의 얼굴이 되어 버린다. 그 환상적인 맛’을’ 도 아니고 환상적인 맛’에’ 는 대체 어느 나라 표기법이냐… 거기에다가 ‘해보시죠’ 도 ‘해보세요’ 도 아닌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의 저 부정적인 키치 오르가슴에 느낌표 두개!! 왜 세 개는 안 될까!!! 어쨌든, 우리 조상들이 정말 풍류를 알았다고, 누가 그랬던가? 거리를 걷고 있다 보니 민족의 심성이 지난 이삼백년 동안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부끄러운 우리 일제 시대의 과거탓을 해야만 하는 걸까.
삼청동이 아수라장이었다면, 인사동은 아비규환이었다. 인사동 어귀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까 발을 들여 놓았는데, 곧 패닉상태에 빠진 나를 발견했다. 열사병에 걸렸더라면 아마 태양열이 아니라 그 태양열을 받은 사람들의 복사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체온이 섭씨 36.5도 라는 의학적 사실마저도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오후였다. 결국 두 군데의 중국집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명동칼국수까지 걸어가서 콩국수와 비빔국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이건 좀 실망이었다. 양념도 양념이지만 면발이 생명인데, 어째 약간 불은 듯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양도 정말 손바닥만큼이어서 면을 추가로 부탁했는데, 이건 또 바로 전에 먹은 면과 다른 느낌이어서 관리가 잘 안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 두 번에 걸쳐 먹은 칼국수와 만두, 그리고 콩국수는 정말 맛있었는데.
서울역은 아름답게 변모했지만, 그렇다고 노숙자들을 튕겨낼만큼 아름다워지지는 않은 모양, 그 수려한 서울역 전면부의 어느 한 구석이 살짝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인데, 우리는 그냥 놔두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면 ‘스스로 그러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적인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역을 역대로 놓아두고, 사람 오고 가는 소리는 소리대로 놓아두지 못해서, 왜 그 소리들 위에 근본도 없는 싸구려 잉카 팬플룻 따위의 연주를 얹어놓는 것일까? 어느 상황에서는 그 소리가 듣기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무더운 여름 저녁 때에, 모든 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상황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저음은 딱히 아닌 연주는 그나마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아서 귀에 굉장히 거슬렸다. 게다가 대합실에는 텔레비젼이 몇 대고 또 그 텔레비젼마다 다른 방송을 틀어대고 있고 사람들은 다 넋을 잃고 보고 있으니, 우리는 어느 순간에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둘러보면 빈 벽도 하나도 없이 모든 벽이며 심지어는 화장실에 소변 보느라 서 있는 변기 앞 바로 눈 닿는 부분에까지 훈계조의 글이 붙어 있다. 그냥 다들 서로 주입을 못해 안달이다. 하긴 뭐, 역에 텔레비젼 있으나 없으나 DMB있는 사람들은 다들 예능프로 보고 있을테니 뭐 별 차이는 없을테지만. 이젠 소음을 강력하게 막아주는 이어폰이 없이는 공공공간에서 책도 읽을 수 없고,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스스로 그러한 것은 어디에 있는가? 하다 못해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있을 법한 아름다운 전라도의 해안에도 러브호텔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수원 따위의 칙칙한 건물이 한 가운데 떡허니 박혀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그건 수미쌍관격으로 다시 삼청동으로 돌아가 생각해봐도 같은 상황이다. 손에손에 대포렌즈가 달린 DSLR을 들고 삼청동까지 가서도 고작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거기 아닌 어디에나 다 있는 던킨이나 커피빈이냐, 아니면 거기에만 있는 무슨 커피집이나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음식점 뿐이다. 뭐 그것도 아니면 홍합먹고 토한 걸로 지은 밥도 있기는 하겠구나, 억지로 가져다 붙인다면…
참, 삼청동 가니까 조선왕조에서 파견을 요청했는지, 어디에서는 머리가 흔들리는 슈렉 인형도 팔더라. ‘겁나먼 왕국’에서 조선왕조에 칙사로 슈렉을 파견한 듯, 뭐 그도 아니면 어디에서 우리나라 여자들이 예쁘다는 얘기는 들어서 슈렉이 피오나 공주를 버리고 조선왕조의 사위가 되려고 왔는지도. 더운데 머리 존나 흔들고 있는 거 보니까 되려 불쌍하더라. 그냥 겁나먼 왕국에 있지 왜 겁나먼 왕국에서도 겁나먼 대한민국까지 와서 사서 고생이냐, 물론 슈렉 3편이 개쓰레기였으니 장사가 안 되었을거라고 짐작은 해도.
# by bluexmas | 2009/08/10 22:44 | Life | 트랙백 | 덧글(10)


서울이 대체로 그렇지만, 제가 볼때는 삼선교>성북동 길 쪽이 좀 덜 망가지고 걸을만하다 생각해요. 좀 더 깊숙히라면 돈암동 아리랑고개>스카이단지>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팔각정>자하문길입니다.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면, 동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버스를 타고 상명대와 국민대 쪽으로 나가보려구요. 국민대에 좀 신선한 학교 건물들이 있어요. 지금은 너무 오래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이렇게 좋은 대중교통수단과 적당히 빽빽한 도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걷기 좋은 환경을 못 가꾸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쉽더라구요.
한남동도 곧 가봐야겠습니다. 지난번에 이촌동도 오랜만에 가봤는데 아파트촌 치고는 나름 괜찮더라구요.


어느 싸이에 올라가있을 사진의 구석탱이에 제 얼굴이 박혀있을까봐 그게 걱정 되더라구요-.-



질문이 있는데요, 편도 요금이 3600이란 건 지금 사시는 데부터 강북까지 그렇다는 얘긴가요?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네요.

그 삼천 육백원짜리는 사실 무궁화호 기차에요. 제가 전철 오래 타는 걸 워낙 싫어해서 돈을 좀 더 내고서라도 빠른 교통수단 이용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고속버스나 기차나…


왜 우리나라는 자꾸 끊임없이 변해야만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뚜렷한 개성이 있어야 아름다운거고, 그걸 보러 사람들이 모여들텐데..
명동은 이제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리더라구여 ㅎㅎ

명동은 저도 정말 아무 생각 없는데, 이 동네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거지? 라는 궁금증은 있더라구요. 먹을데도 놀데도 사실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가지 아직 좋은 점은 저 아래 북카페 부근부터 엄청나게 많은 박물관이 있다는 것과 수제비집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외국인들을 데려가니 막상 보여줄 것이 없어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