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의 이유(1)-불쏘시개
그가 처음 출근하는 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근거렸다. 물론 그에 대해서였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지만 외국어 능력을 보고 뽑았다는 소문이 사실은 채 출근도 하기 전부터 돌았다. 소장 한 사람과 옛날부터 아는 사이라는 얘기도 함께 돌았다. 그가 배정받은 해외영업팀의 박부장에게 정대리가 물었다.
“부장님, 뭐 좀 들은 거라도 있으세요?”
“뭐?”
“아니, 삼십대도 꺾였다고 들었는데, 기껏해야 대리 경력 밖에 안 되잖아요. 미국에서 회사 좀 다녔다던데 건축사 면허도 없네.”
이제 곧 과장 진급을 바라보고 있는 정대리는 그의 바로 밑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영 불편한 눈치였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많은 사전 정보를 캐려 들었다.
“뭐래드라,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하고 박사과정에까지 발을 담갔다가 그곳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또 몇 년 다니다가 정리해고를 당했다던데?”
“아니, 미국 경제가 나빠서 사람들 무차별적으로 자르던 것도 몇 년 전 얘기잖아요.”
“그게, 소장님 얘기로는 그렇게 정리해고 되고 들어와서는 글을 쓴답시고 돈도 못 벌면서 이런저런데에 기웃거렸나봐. 잡지에도 뭔가 썼다고 그러고 책도 번역했다는구만.”
“책이라면… 건축책이겠죠?”
“아니라던데, 그게 무슨 음식관련 책이라고 하더라구. 소장님이 제목도 말해줬는데, 음식에 관심이 없으니 기억이 날리가 없지. 뭐라더라? 무슨 남자…?라던데.”
박부장의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고서야 정대리는 시선을 그 남자가 앉은 자리로 돌렸다. 감색 정장에 그다지 두드러질 것도 없는, 하얀 셔츠였다. 넥타이는 아마 내일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뭐 그런 줄무늬였다. 물론 그런 걸 레지멘탈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정대리는 몰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다지 눈썰미가 없는 정대리의 눈에도 그 남자가 확실히 얼이 좀 빠진 듯 보인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눈에는 생기가 없어보였고, 정말 어제 잘랐는지 짧은 머리는 뭔가 영 어색했다. 보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 어색했다.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돈을 들여 미국까지 가서, 박사에까지 있다가 기껏 음식책을 번역했다니 참 허송세월하고 사는 타입인가보네요. 집이 좀 잘 사나…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조직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맞춰 살기는 싫으니까 그냥 편하게, 집은 좀 먹고 사니까 취미 같은 걸로 슬렁슬렁 그런 번역이나 하면서 작가랍시고 우쭐거리면서 돌아다니고…”
“뭐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뭐 책이 기대만큼 잘 안 팔렸던 모양이야. 뭐 자비 들여 사람들 모아서, 음식책 번역했다고 음식도 해 먹고 그랬나본데 뭐 영 소득도 없고 있던 돈만 까먹었던 모양이지. 뭐 그건 그렇고, 가서 일이나 하셔.”
대체 무슨 곡절로 결국 다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사실 정대리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 남자가 건축을 하다가 집어치우고 딴 걸 하다가, 또 뭔가가 잘 안풀리자 다시 그 울타리 안으로 다시 기어들어왔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속이 뒤틀리는 걸 느꼈다. 대체 이 신성한 건축을 뭘로 보고… 설계사무소 생활 7년 동안 이 바닥 안에서 인정받으려고 아둥바둥 매달렸던 자신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는 어느새 야릇한 악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이 바닥이 만만하다고 느끼는 모양인데, 그게 아니라는 걸 내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그는 바지주머니에 양 손을 각각 넣고, 엄지를 나머지 네 손가락 사이에 넣고 지그시 눌렀다.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뚜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대리는 목을 왼쪽 먼저,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려준 뒤 여유있는 걸음걸이로 그 남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째 이 지루한 사무실 생활이 조금 즐거워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의 불행을 장작삼아 자기 행복을 불을 피워 본 것도 군대시절 이후로는 영 기억이 없었다. 일단 불쏘시개부터 찾아봐야 되겠
재취업, 채책좀파파파팔리나, 고기반찬먹고프다, 사장님원고료는언제쯤
# by bluexmas | 2010/03/12 01:27 | — | 트랙백 | 덧글(39)
90년대 한창 유행이던 기업내 연애 드라마처럼 사내커플도 등장하려나요..
재밌어요!
현실의 제 능력은…ㅠㅠ;;
글 재밌어요>_<
그럴듯하지요 >_<?
사연있어 보이는 그 남자에게 점차 빠져드는 정대리…헉
새벽 5시에 힘겹게 일어나서 공부 좀 하다가 봤는 데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달에 한 번씩 받죠? 저는 늘 2주마다 받아서 그 기쁨이 참…T_T
고기반찬은 달빛요정만루홈런의 가사였던 거 같은데..흙흙
비공개 덧글입니다.
픽션이지만 사실인듯…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듯…
세상에 이런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건데, 조금만 길이 다르면 수군수군 흉보는 사회분위기는 좀 나쁜 잔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