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계에 관한 생애 최악의 꿈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떠보니 대대본부 직속상관이었던 정중사였다. 전쟁이 났고 부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창밖을 보니 보병들이 무릎쏴 자세로 총을 겨눈 채 사람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람의 벽이 둘러싸고 있는 건 도시의 관문인 철벽이었다. 매트릭스 따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벽이 조금씩 금가기 시작했다. 곧 구멍이 뚫렸고, 그와 동시에 사람의 벽은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벽을 뚫고 나온 것은, 사람이 아니고 기계였다. 사람이 타고 조종하지도 않는, 순수한 의미의 기계. 기계들은 사람이 쏘는 총알 따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바로 대응 사격을 개시하며 전진했다. 사람의 벽이 곧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정중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보다 20kg이상 덜나가는데, 꼭 예전의 부대로 복귀해야만 합니까? 오랫동안 쓰지 않아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군인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중사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꿈에서 깨었다. 새벽 두 시 반이었다. 다섯 시가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잠들어 깨어났을 때에는 열 한 시였다. 2월부터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는, 왼쪽 윗입술의 세로로 길게 갈라진 틈에서 피가 나왔는지, 입술이 온통 말라붙은 피딱지 투성이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입술을 씼었다. 수돗물이 차가왔다. 그리고 기분은 더러웠다.
# by bluexmas | 2010/04/15 15:03 | — | 트랙백 | 덧글(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