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 ‘스타일’ 면 시식기
최근에 이런저런 면음식을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 뭔가 한중일 삼국의 것들을 하나씩 섭렵한 기분이라서, 뭔가 대단한 경험이라도 한 것인 양 하나로 묶어서 글을 쓰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한중일 삼국에 가서 먹은 면 이야기라고 착각하게 만들 것 같아 ‘스타일’을 덧붙여 본다.
1.한국-<봉피양> 강남점의 물냉면
평양냉면 같은 음식의 ‘원형’을 남한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음식의 원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평양냉면에 대해서는 그냥 잘 모를 뿐이다. 내가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냉국수인데 너무 시거나 달지 않고, 또한 면이 굵으면서도 질기지 않은 그 느낌이 좋아서이다.
이제서야 먹어본 봉피양 강남점의 물냉면은 11,000원이라는, 냉면으로 따지면 참 뭐한 가격인데, 굳이 가격 때문은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음식이 아니었다. 국물에 동치미를 섞었는지 아무개님의 표현을 빌자면 ‘감각적’인 느낌이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오는 김치 역시 신맛이 두드러졌는데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국물이 그렇게 시지 않은데 신 김치.고명으로 강조를 했다면 애초에 맛의 느낌이 퍼지거나 날카롭지 않은 면과 더불어 균형이나 조화가 맞는, 뭐 그런 게 내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이라는 것의 느낌인데, 뭐 그렇다. 거기에 가격까지 감안한다면…
2. 중국-명동<개화>의 중국냉면
중국냉면이라는 음식을 작심하고 먹어본 게 아마 미국의 단골집에서였을텐데, 뭐 이런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기본적으로 그런 면이 찬 국물과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다가 딱히 국물과 섞이지 않은 땅콩버터까지… 그 뒤로 다시 먹어본 기억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좀 지나 개화에서 먹게 된 중국 냉면은, 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이 신기하게도 어울리는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느낌이었다.
이 집 중국냉면의 맛은 은근히 복잡하다. “대부분 닭”이라는 육수(물어봤더니 저런 대답을 들었다)이라는 육수가 바탕을 깔아주고 그 위로 가죽나물, 말린 새우. 말도 안 될 정도로 다진 나물, 말린 해삼, 오향장육과 같은 고명들이 다양한 맛과 식감을 선사한다. 주로 짠맛이 두드러지고, 해삼의 오돌오돌함이나 오향장육의 꼬들꼬들함, 말린 새우의 바삭바삭함과 같은 식감도 각자 자기 자리가 있다. 다른 중국냉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땅콩버터는 저렇게 복잡한 맛과 식감을 특유의 부드러움과 지방의 매개력으로 부담을 줄여주면서 한 데 묶어준다. 꼬들꼬들한 면도 잘 어울린다. 두 번 먹을때마다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하다가 국물까지 다 먹었다. 하지만 ‘아, 중국냉면이라는 게 이런 맛이구나! 다른 곳에서도 먹어봐야지’라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잘 들지 않는다. 가격은 중국집에서 식사로 먹을 수 있는 면치고는 비싼 8,000원. 그러나 위에서 먹은 냉면이 11,000원이라면…
3. 일본-논현동<울트라멘>의 쇼유라멘
워낙 일본에 자주 가시는 일본 음식 전문가들이 많으니 내가 뭐 라면 맛 같은 걸 안다고 쭈볏거릴 의도는 없고… 어쨌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일본에 갈 때마다 라멘을 먹게 되는데 그 맛이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라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렵지는 않지만 성의를 기울인다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분위기/마인드로는 바라기 어려운 것이라고나 할까.
지하철 역에서 은근히 멀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다고 할 수 없는 논현동의 <울트라멘>은 그런 측면에서라면 찾아가 먹을 수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가게에서 말한 것처럼 열 몇 시간 끓였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렇게나 만든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진하고 짠 것을 좋아해서 나에게는 좋지만 이 맛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삽겹차슈(3,000원)을 추가해서 먹었는데 역시 잘 조리한 느낌이었다. 아무개님의 ‘안전한 집’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공감한다. 이 부근에 이 집과 <강남교자> 정도만 있어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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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luexmas | 2010/08/09 10:34 | Taste | 트랙백 | 덧글(26)
안성에 차를 몰고 갈 여건이 된다면 [우정집]냉면도 한번 맛보세요. 저야 멀어서 못가는 곳인데, 차로 40분 내로 주파가능하다면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음 그런데 일본 면만 온면이네요? ^^
미국에 있으면 한국/일본 음식이 그립고, 한국 있음 미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이 그리우니 저는 참으로 청개구리 띠인가봐요;;;;
삼삼하면서 달착지근한 국물이랑, 고기듬뿍 완자랑…^^
중국냉면은 먹어본 적이 없는데 한번 맛보고싶네요!
일본식 면요리는 따뜻한 면요리였군요. ^^
논현역/신논현역 사이의 울트라멘은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아직 못 가봤군요.
꼭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
사진으로 볼때마다 매번 땡깁니다. ^^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아 물냉면 진정 먹고 싶습니다. 비빔냉면은 그래도 이제 인스턴트가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선 거 같지만 물냉면은 아직도 갈 길이 머네요. 이 근처에 괜찮은 냉면집도 없고요. 훌쩍…
그래서 제가 한 번은 양지머리를 끓여서 냉면 육수에 도전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진한 느낌이 안 나서 그냥 그렇던데요. 메밀가루도 사실 수 있을테니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것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