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맥주 포함 맥주 8종 시음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 때문에” 요 며칠 동안 국산/수입 합쳐서 맥주 8종을 시음했다. 대동강 맥주도 어찌 되었든 한반도에서 나온 거니까, 그것까지 포함하자면 1종을 빼놓고는 전부 국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평소에 국산 맥주라고 생각했던 그 맛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기 때문이다.
대동강 맥주(500ml/5.5%/5,000원)
주변에서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꼭 내 입으로 확인해봐야만 했는데 결과는 정말 그랬다. 비교를 하자면 부득이하게 하이네켄과 칭따오를 들먹일 수 밖에 없는데, 하이네켄에서 칭따오로 넘어가는 사이에 신맛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칭따오에서 대동강 맥주로 넘어가면서는 그 남은 신맛도 없어지고 똑 떨어지는 느낌이 남는다. 재료에 쌀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쌀 특유의 뭉근한 맛은 여전히 느낄 수 있지만, 이 맥주는 뒷맛의 여운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똑 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 맥주들은 그 특유의 시큼한 여운이 짜증나도록 긴데, 대동강 맥주는 어느 순간 그냥 탁, 하고 끊긴다. 쓸데없이 탄산이 세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지나친 탄산은 맥주가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소이기 때문이다. 맛은 마음에 들지만 가격(소매 5,000원, 홍대 앞 <한 잔의 룰루랄라>에서는 8,000원이라고 들었다)의 압박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아사히 프리미엄 몰트인가를 술집에서 14,000원에 먹느니 이걸 8,000원에 마시겠다.
하이트 드라이 피니시(330ml/5.0%)
시음을 하려던 참에 새로 나온 것 같길래 얼씨구나 좋다 집었다. 그러나 이 맥주는,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이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수하고 있는 접근방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품이다. 그 고질병은 바로, 수입 맥주도 엄청나게 들어와서 더 이상 이 정도의 맥주맛으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맥주맛에 대한 근본적인 고려 없이 작은 특징 한 두가지만을 조금씩 바꿔서 엄청나게 새로운 맥주를 내놓는 양 마케팅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거기에다가 외국의 기술 등을 도입했다고 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역시 너무나도 뻔한 수법이다.
말이 길었는데, 이 드라이 피니시라는 맥주 또한 그런 맥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형적인 우리 국산맥주의 그 시큼털털한 맛을 가지고 있으면서,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그 느낌이 ‘드라이’하시다. 달리 말하자면, 그 마무리가 조금 좁은 느낌. 오히려 그 점이 사람에 따라 넘어가는 느낌을 더 나쁘게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나왔다고 좋아할 필요가 없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맥주는 기특하게도, 성분표기가 되어 있다. 맥아, 전분, 홉, 물. 과연 전분은 어떤 식물에서 나온 것일까? 옥수수에 이 맥주 한 병 걸겠다. 시큼한 맛이면 쏘는 냄새가 옥수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쌀은 그렇게 쏘지 않는다.
카스 프레시(500ml/4.5%)
정말 오랜만에 마셔봤는데, 슬펐다. 맛 없는 맥주가 갖춰야할 악덕을 정말 골고루도 갖춰서, 마시는 내내 ‘오오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라고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GRE를 준비하거나 뭐 영어 단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빵의 신선함이 가시고 맛이 없어졌을 때 ‘stale’이라는 형용사를 쓴다고 알고 있을텐데, 이 맥주가 정말 딱 stale한 그 맛이다. 시큼하면서도 뒷맛은 약간 쏘듯 달고, 도수가 높지 않지만 퍼져 나오는 알코올의 기운이 굉장히 거슬린다. 소주를 안 타고 소맥맛이랄까. 8종 가운데 최악.
하이트(500ml/4.5%)
카스보다 조금 낫다. 그래도 이만하면 그 가격 덕분에 참고 마실 수 있지만, 이걸로 만약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다면 그 다음날 아침에 꽤나 슬퍼질 것 같다.
맥스(330ml/4.5%)
‘이제 우리는 100% 보리로 맥주를 만들어!’라고 신나게 떠드는 건 좋은데, 그건 스스로 그 전까지 만들었던 맥주의 재료가 별 볼일 없었음을 인정하는 꼴 아닌가? 그래서 맥스는 일종의 자충수라는 생각이 든다. 보리님 덕분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처음 입에 들어갈 때 느낌은 그냥 하이트나 카스보다 훨씬 더 잡맛이 적고 부드럽다. 그러나 넘기고 난 다음의 느낌이 많이 두드러질 정도로 다르지 않은 건, 같은 바탕으로 만드는 맥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린 이치방(330ml/5.5%)
아주 오랜만에 마셔봤는데 뭐랄까 이 맥주는 딱 중간 정도의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산 맥주님들의 그 시금털털한 느낌은 없어서 참 좋은데, 잘 마시고 딱지를 읽어보니 대륙에서 태어나셨다고 해서 김이 좀 샜다.
5.0 오리지날 익스포트(500ml/5.2%)
이마트에서 ‘와 맥주의 본고장 독일에서 온 걸 국산 맥주 수준의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라며 야심차게 내 놓은 세 종류 가운데 하나인데, 이번에 처음, 맛을 비교해 볼 겸 이걸 마셔봤다. 그 3종 가운데 하나가 ‘Drei Kronen(영어로 three crowns)’인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다면 2003년 베를린에서 보름 머물때 미국 애들이 짝으로 사다놓고 마시던, 물보다 더 싼 맥주가 바로 저 드라이 크로넨인 것 같다. 그게 대체 얼마나 맛이 없었냐면, 그 미국 애들이 주말에 ‘이렇게 시끄럽게 굴다가 나치한테 총 맞아 죽는 건 아냐’라고 걱정될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파티할 때 마시는데 동시에 한 모금 넘긴 나와 친구놈 하나가 둘 다 ‘WTF?!’이라는 표정을 지었던 뭐 그런 맥주였다. 그리고 이 맥주도 사실 크게 다를 건 없었다. 포도주도 싸구려를 마시면 포도고 뭐고 맛을 떠나 알코올의 느낌이 확 두드러지는 것들이 있는데, 드라이 크로넨도 이 맥주도 역시 그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 다행스럽게도 물/맥아/호프로만 만드셨다니 그 느낌과 국산 특유의 시금털털함 가운데 어떤 것들 선택할지는 순전히 마실 사람의 몫이다.
사이공 익스포트 (355ml/4.9%)
방금 마셨다. 마지막 남은 한 병이었는데 그냥 다 마셔버리고 이 글도 끝낼까 해서…(핑게 좋다-_-;;;) 저 위의 하이트 드라이 피니시가 만약 드라이한 맥주를 표방하려 했다면 얘한테 좀 배워야 할 듯. 쌀맛 때문에 그 드라이함이 좀 삼천포로 빠지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전체의 느낌이 좁다. 이걸 드라이하다고 표현해도 될 듯. 중국도 그렇고 심지어는 북한까지 그렇듯, 우리는 일본을 빼고 주변 국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보다 못 산다고 생각하는 베트남 같은 나라도 맥주는 우리나라 것들보다 낫다. 내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격이 적당하다면 국산 맥주의 대안 정도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듯.
# by bluexmas | 2010/08/16 10:14 | Taste | 트랙백 | 덧글(32)


비공개 덧글입니다.



카스 프레시 “악덕”도 완전 공감.. ㅋㅋ 뭐랄까 설겆이하다말아서세제가남은컵에다가맥주따라서성의없이건네주는호프집알바생이생각나는맛이라고나할까..
빨리 퇴근해서 맥주마셔야겠어요.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 왠지 격하게 맥주가 땡기는 포스팅~



저도 간만에 옛날 맥주시음기 좀 적어볼까 합니다~



그런 제 입에도 국산 맥주는 맛이 없습니다-_-
단 걸 좋아해서 그런지 술도 달달한 걸 좋아하지 말입니다 ㅠ_ㅠ






갠적으로 대동강 훌륭하죠…ㅠㅠ;;
그런데 우리나라 맥주중 카스 레드 6.9가 소주폭탄 맛나고 괜찮다능..ㅠㅠ;;



마셔본 것은 저 중 키린 하나 군요.
그러고보니, 요 전번 듕국집에서 칭타오 시켰더니 키린을 가져다줬었죠. 칭타오 다 떨어졌다고 하면서… 모처럼 마셔보려 했는데 슬펐어요. 둘이 여기서는 가격이 갔던데,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귀국할 것을 생각하니 우울해지는군요……. 맥주도 와인도 좋아하는데 훌쩍훌쩍

맥주도 와인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훌쩍훌쩍;;;;








대동강 맥주는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블스마스님이 이렇게 쓰시니 조만간 꼭 먹고 말리라 -_-!는 결심이 불끈!






그냥…무난한 맥주.



대동강맥주에 2라고 써있는 게 엄청나게 신경쓰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맛있다니 또 먹어보고 싶은데 여기선 구하기 어려울 거 같네요.
아사히 프리미엄 몰트 ㅋㅋㅋㅋㅋ 저번에 들어갔을 때 편의점에서 보고 호기심에 사봤는데 그 때 포스팅 할걸 그랬네요. 3천원 넘었던 거 같은데 몇 모금 먹고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들려오는 말로는 포장이 바뀐 적이 있다고 하던데 ver 2.0뭐 이런 거 아닐까요? 잘 찾아보시면 의외의 장소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맨하탄이나 퀸즈 한인 수퍼랄지… 맛난 맥주 마음껏 드시니 부럽습니다-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