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짓을 그만두며

안녕하세요, 메일 잘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실 수도 있지요. 다만, 메일이라면 결국 사람 대 사람의 의사소통이니만큼 이름 정도는 알려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건축에서 요리로 전공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번역만 하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그냥 글을 씁니다. 아실 수도 있겠지만 잡지에 건축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분야에 대한 글도 조금씩 쓰고 있으니 그냥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글을 쓴다고 스스로는 소개하고 다닙니다. 따라서 딱히 전공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구요, 예전과 다른 일을 본격적으로 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과정에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던 일입니다. 단지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서 이제는 더 늦어지기 전에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아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준비는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블로그가 바로 그 반증이 되겠지요.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하루 이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건축도 좋아하고 회사도 다니라면 어떻게든 다닐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글 쓰는 것을 더 좋아했고 또 잘할 자신도 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어떠한 계기로 지금 공부하시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그걸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떤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주시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저는 굳이 건축 실무를 계속해서 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배운 것이 낭비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동안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 시간 속에서 얻은 많은 것들을 (저의 경우에는) 지금 글 쓰는데 이렇게 저렇게 녹여서 쓰고 있으니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또한 공부에 관해서는 또 다른 계획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예 뚜껑을 덮고 치워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이 길었는데, 지금 하는 공부든, 무엇이든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거나, 또한 그 뒤에 마음이 끌리는 또 다른 것이 있거나 어찌 되었든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절실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그 절실함을 따라가기로 했고, 대가로 불확실성을 함께 끌어안고 가기로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얼마만큼 돈을 벌지에 대한 생각은 사실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돌아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이 결정에 대한 후회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평범하게 가진 사람이고 그런 경우 대부분 모든 것을 다 얻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돈을 덜 벌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로,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결정했습니다.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저도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지금 이걸 하는 것이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즐거운 건 사실입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가슴 속에서 끄집어 내버려야 할 이야기 둘.

1.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군가 메일을 보냈다(메일함을 뒤져보니 3월 중순이다). 건축에서 요리로 전공을 옮겼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그럴 수 있었냐고 물었다(받은 메일을 그대로 긁어오면 내가 인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적어지므로 편하지만…). 내가 답장으로 보낸 메일을 그대로 긁어왔다. 나는 아직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왜 자기 이름 석 자조차 밝힐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저 사람이 자기를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별 노력이 없어도 누군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진지함이 필요한 이야기라면 아이디나 메일 주소 아닌 이름 석 자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는, 그런 부분에서는 어쩌면 보수적인 사람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답해줬다. 그건 내 메일이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받은 사람은 그 이후로 침묵을 지켰다.

2. 경기도 모처에 있는 빵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그 집 주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주변의 다른 빵집 주인들로부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었고, 그래서 호기심에 한 번 찾아가보고 싶었다. 우리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에 있어서 차를 끌고 찾아갔다. 책과 명함을 들고 갔다. 빵을 몇 개 사고 물어보니 마침 주인 양반이 자리에 없다기에 책과 명함을 남기고 왔다. 그때가 4월이었다. 나는 막 잡지의 큰 특집 기사를 마감하고 지쳐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짐을 싸들고 며칠 통영으로 내려갔다. 그는 전화를 해서,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다며 요즘 고민이 많은데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내가 고민을 해결해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는 할 수 있으므로 약속을 잡았다. 그는 약속 직전에 전화를 해서는 지킬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며 미루기를 원했다. 그러자고 했다. 그 다음 약속은 저녁이었는데, 내가 빵집으로 찾아가겠노라고 했다. 오후쯤 미리 가서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는 일 때문에 서울에 있어서 밤이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때까지 그를 기다려야할 의무는 당연히 없었다. 속으로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그는 다음에 만나자며 연락하겠노라고 했다. 그 뒤로 그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6개월이 지난 다음 다른 일로 얽힌 자리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저 나를 힐끗 보면서 “우리 예전에 통화한 적이 있죠”라고 말했다. 네, 우리 통화한 적이 있지요. 약속을 두 번이나 깨고는 그 뒤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죠. 미안하다거나 뭐라거나.

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지 모르는 일이 바로, 올 한해 내내 나를 괴롭히고 괴롭혔던 모든 사건사고들의 표상이다. 딱 두 개만 예로 들었지만 여기에는 패턴이 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 꼭 따져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알면서도 나는 때로 무시해왔다. 사람 사는데 그걸 전부라고 내세우는 것도 너무 매정한 건 아니겠느냐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솔직히 사람 좋다고 칭찬 같은 것 받고 싶은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그냥 다 얼굴이 두껍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지겹다. 그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자원봉사는 그만 하겠노라고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단 한 번도 그게 나에게 돈이나 명예를 불러와 줄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도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다. 사는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 바보짓은 그만 둔다. 나도 남들처럼 살아야 되겠다. 혼자 쓸데없이 진지함을 끌어안고 병신같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래봐야 알아주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 블로그를 집어 치울까 말까 끝없이 고민하는 이유도 바로 같은 종류다. 억지로 와 달라고 한 적 없다. 가치를 인정해줄 수 없다면 오지 않아도 나는 탓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무나 올릴 수 있는 글 따위 올리면서 조회수 구걸한 적은 없다.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감사하지만,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이 단지 숫자만 채워준다고 좋아하기에 나는 이 짓거리를 너무나도 오래 했다. 그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by bluexmas | 2010/12/23 01:32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