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bands that I have forgotten for a while
Sun Kil Moon 며칠 전, 아주 작은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 오후 네 시쯤이었다. 그 시간 대, 창에 바로 붙어 있는 내 책상에는 햇살이 비친다. 창 밖을 내다 보았다. 그날 따라 포근해보였다. 실제 기온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셔플로 돌리던 아이튠스에서 Sun Kil Moon의 <Lost Verse>가 흘러 나왔다. I came out from under her warm sheets, into the brisk late October. 가사 같은 순간이 떠올랐다. 나의 경험이었을까? 아니면… 순간의 분위기와 노래가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진다고 느껴본지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셔플을 멈추고 앨범을 처음부터 듣기 시작했다. 마크 코즐렉도 선 킬 문도 좋아는 하지만, 오랫동안 진득하게 들어본 적은 없었다. 지루하다기 보다, 끝까지 다가갈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껴서였다. <April>은 어떤 여행의 배경음악으로 쓰기 위해 산 앨범이었다. 그게 어떤 여행이었더라? 잠시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애써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좋은 것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말하면 달아나거나 빼앗길까봐 그런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작은 것일 수록 더 말하기 어렵다. 그것도 달아날까봐, 그것도 빼앗길까봐. 그것도 아니면, 뭐 그런 것들로 좋아하냐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냐고 이야기 들을까봐. 마음은 바다를 닮았다. 넓어서가 아니다. 다만 출렁이기 때문이다. 불안의 파도는 잘 날이 없다. 출렁인다. 다만, 출렁인다. 그래도 셀 수 없이 많은, 그렇게 구차하도록 자질구레한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추운 겨울 밤, 아버지가 사오셨던 색칠공부책과 땅콩튀김 호떡과 같은 것들이다 . 나는 일곱살쯤이었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아니, 써 먹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에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팔아 먹기에,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으니까, 아니면 평생 비밀을 지켜 줄 사람하고만 나누고 싶으니까. 사랑의 이면계약은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고민은 항상 거기에서 싹텄다. 나도 한때는 비밀이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지켜주는 것인지 몰랐다. 배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 깨우쳐야 하는지도 몰랐다. 심지어는 비밀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대가로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면서 스스로 깨우쳤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그러고 싶지는 않다. 피로 물든 책을 사람들 앞에 꺼내 놓고, 그 비린내를 참으며 배우라고 감히 요구할 수 없다. 배우거나 깨우치거나, 고통스럽기가 마찬가지라면 내가 고통의 근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아직도 비밀을 지키는 데 능숙하지 않다.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렇다. 삶보다 큰 핑게는 아주 가끔 먹히기도 한다.
Mars Volta 출근하면서 셔플로 돌린 아이폰에서 마스 볼타가 흘러나왔다. 한참 동안 집에서 굴러다니던 클래식 음반들을 듣다가 또 갑자기 예전에 듣던 음악들로 돌아왔다. 예전에 잘 안 듣던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2003년인가 나온 앨범 한 장을 가지고 있는데, 마음이 불편할 때 들으면 더 불편해지는 맛에 듣게 된다. 불편함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달까. 물론 상처에 소금 바르는 뭐 그런 느낌은 아니다. 교보타워로 가는 언덕을 오르며 노래를 듣는데 등에 소름이 돋았다. 잘 안 듣던 노래들을 듣다가 소름이 돋는 경우가 요즘 종종 있다.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있는 기분을 느낀 시간대는 중간 생략-이 시간의 나는 내가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같은 노래를 들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난장판인 음악을 들으면서도 죽은 듯 잤다.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잘 때는 이렇게 자본 적이 없다. 버스가 오산에 다 도착했을때쯤 깼는데 버스에 달린 시계를 보고서 생각보다 차가 밀렸다는 걸 알았다. 버스가 시내를 도는데 식은 땀이 흐르고 구역질이 났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어제 갓 뽑은 듯한 새 차를 탔다. 색깔부터 냄새까지, 차에는 뻣뻣함이 물씬 풍겼고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토하기 직전에 내릴 수 있었다. 걸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택시를 탔다. 금요일의 사치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을 청했다. 아주 늦은 시간에 분명 동 대표를 뽑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원래 찾아줬으면 하는 사람은 찾지 않고, 찾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은 찾는다. 필요한 건 얻을 수 없고, 필요 없는 건 계속해서 들어온다. 나는 그 시계를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차지 않았다. 좋은 건 말하지 못하고, 싫은 건 말한다. 그게 그렇다. 금요일이, 그랬다.
# by bluexmas | 2011/02/12 01:09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