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와 땅콩의 오후

먹지 않은 고구마가 있다는 게 갑자기 생각났다. 요즘 빵을 90% 끊었다. 대신 아침에 먹으면 될 것 같아, 무쇠팬에 담아 오븐에서 구웠다. 남부식으로 삶아 먹으려고 둔 날땅콩이 있다는 것도 갑자기 생각났다. 귀찮아서 안 먹게 될 것 같아 그냥 오븐에 꼽사리로 끼워넣어 구웠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 도향촌에서 파는 과자를 부숴서 넣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땅콩은 거의 타기 직전까지 굽거나 볶는다.
모레 오전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이번 달의 마감도 그럭저럭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봄방학도 막바지. 그러나 끝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만큼 일이 잘 되지 않는 이 시점이 사실 가장 힘들다. 마음은 벌써 일을 끝난 다음의 시간으로 넘어가서 몸더러 ‘빨리 와서 합체하라’고 지랄발광을 하는데 몸은 마음이 없는만큼 더디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둘 다 손해를 보게 된다. 둘 모두에게 중용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답은 없다. 날이 너무 좋지만 딱히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 너무 잘 놀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요즘은 늘 이렇다. 밤에는 모든 걸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 같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밤마다 다른 세계에 다녀오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저녁으로 먹을 파스타를 위한 토마토소스를 만들어놓고 달리기를 하러 나가기 직전이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달리기를 하고 난 다음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배가 너무 고플때 음식을 만들면 그 음식도 맛이 없고, 식욕도 너무 떨어져 잘 먹히지 않는다. 해가 길어져서,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닥에 깊이 감춰둔 말들은 절대 손대지 않고, 위에 떠 있는 것들만 눈에 띄는 대로 건져 올린다. 요 며칠 동안 뭔가 쓰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고구마는 생긴 것과 달리 별로 맛이 없었다. 푸석하고 썩 달지도 않았다. 그래도 먹기는 먹어야 한다. 이런 작은 일에 실망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건 고구마의 잘못도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고구마가 맛없게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또한 맛없는 고구마도 누군가는 보듬어주어야 한다. 아마 이번이 내 차례인 것 모양이다. 설탕이나 버터, 계피의 도움을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보겠다. 가끔 물 대신 우유의 도움을 받는 건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우유도 똑 떨어졌다. 장보러 갈 시간이 없는 요즘이다.
# by bluexmas | 2011/03/12 18:00 | Life | 트랙백 | 덧글(9)
달리기 얘기하시니 저도 오늘은 좀 나가서 뛰던 바퀴굴리기를 하던 해야겠네요. 날씨가 그렇게 좋다는데 간밤 회식을 핑계로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있었더니 어깨에서 곰팡이가 날 지경입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