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운동

이사 오늘 견적을 뽑으러 아주머니 직원이 왔다 갔다.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리 좀 많이 하셔야 되겠네”라는 말 덕분에 2년전 이사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 이 빌어먹을 광역버스 생활도 이제 안녕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내 삶의 흔적을 보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돌연 갑갑해졌다. 게다가 이 이사라는 것이 나만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문제니까 그게 또 얽히고 섥히고. 뭐 남의 사생활이니까 여기 늘어놓을 필요는 없는데 들어갈 집은 관리 소홀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그것 때문에 여러가지가 꼬여있어 조정을 잘 해야 되는데…

글을 쓰는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 살던 1999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사 생각이 쭉 났다. 이왕 생각난 김에 읊어볼까.

1. 1999년: 학교 뒷쪽에 사근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거기 다세대 1층 원룸에서 첫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옆 윗집 다 애들을 키워서 괴로왔다. 블랙홀도 키우기 시작했다.

2. 2001년: 같은 액수로 조금 더 넓은 집에 살고 싶어 마장동 축산물 시장 입구의 가겟집 2층으로 이사했다. 아주 큰 방과 아주 작은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큰 방에서 모든 걸 다 했다. 여기에서 유학 준비를 했는데 포트폴리오를 위한 모형이며 이런 것들도 전부 다 다시 만들고 처음 디지탈 카메라(니콘 쿨픽스 995)를 사서 사진도 찍고… 하여간 온갖 것을 다 했다. 그래서 결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3. 2002년: 미국으로 이사.

4. 2003년: 다른 아파트로 옮겼다. 블로그질을 시작한 데가 여기였나? 유홀 트럭 직접 빌려서 이사했다가 운전이 힘들어서 죽을 뻔.

5. 2005년: 교외의 집을 사서 또 이사했다. 여기 이사가 또 지옥이었는데, 책에 언급했던가… 하여간.

6. 2009년: 다시 바다 건너 이사. 역시 지옥. 베이킹 도구들이 든 상자가 증발해버려 많이 울었다.

7. 2011년: 곧 이사 예정.

아이고, 헤아려보니 11년 동안 7번 이사했다. 그럼 평균 1년 반에 한 번 인가?ㅠㅠ 갈수록 짐은 늘어가는데 사람은 더 잘 살게 되는 것 같지 않다.

운동 비도 오고 해서 달리기를 안하고 정말 오랜만에 헬스클럽에 갔다. 얼굴 비추기 뭐해서 안 간 측면도 있는데 막상 가니까 운동이 너무 즐거워서 여태껏 안 오고 뭐했을까 싶었다. 그래봐야 1주일 더 가게 되겠지만… 아, 이사 얘기를 쓰고 보니 또 몸무게의 변천사도 한 번 늘어놓고 싶어졌다. 역시 1999년 경부터 시작하면 되려나.

1. 1998년: 제대 직후, 96킬로그램. 가을부터 운동 시작

2. 1999년: 복학, 기억하기로 70킬로그램 중반.

3. 2000년: 요요현상 시작.

4. 2002년: 빠진 몸무게의 50%정도 회복.

5. 2004년: 거의 원래 수준에 도달. 다시 운동 시작.

6. 2005년: 69킬로그램으로 새로운 최저점에 도달.

7. 2007년: 후반기쯤부터 다시 요요현상?

8. 2008년: 계속된 증가세.

9. 2011년: 밝힐 수 없다.

아 이 두 가지만 따져봐도 나는 참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것만 같다… 저런 주제 묶어서 TED인가 뭐시기 강의 한 판 하면 재미있겠네. 제목하여 <끝없는 비만과 정리해고를 극복한 사람인 척 살아가는 방법> 아니면 <남의 나라에서 엄청나게 적응한 사람인 듯 위장해서 사는 법>쯤이면 될 듯? 어째 <간만에 돌아온 조국이 낯설어도 안 그런척 사는 법>이 더 선정적일지도? >_<

어쨌든, 이사 가면 다시 근육 운동을 해서, 여름까지 3kg 정도만이라도 빼기로 했다. 새마음으로 다 떨어진 보충제도 주문했고, 가자마자 헬스크럽부터 알아볼 생각인데 동네 무슨 복지 센터 같은 게 있다고 알고 있다. 과연 세 번째 요요현상과 나의 싸움은 어떻게 결판이 날 것인가?

그나저나 저렇게 몸무게 널뛰기 할때 <Raging Bull>같은 영화 한 편 찍었어야 되는 건데…. 아 정말 나는 다 필요없고 나 자신과의 싸움만으로 지친다. 몸과의 싸움은 뭐 그렇다고 쳐도 성질과의 싸움은 정말 버겁고 또 괴롭다.

 by bluexmas | 2011/04/08 01:29 | Lif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대건 at 2011/04/08 02:02 

헛… 사근동이 학교 뒤라면, H대학인가요…

저도 행당동으로 학교 다녔었는데 말이죠.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08 02:07

아뇨 전 왕십리대 졸업했습니다만^^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4/08 07:25 

어제 비오는데 겁나 뛰었더니 발목 다친것 같아요 계속 쑤셔요.

 Commented by JOSH at 2011/04/08 07:39 

분명 나는 아닌데 내가 여기 글 써 놓은거 같다….

OTL OTL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1/04/08 08:25 

어디로 이사 오시나요??

 Commented by 밀납인형 at 2011/04/08 10:23 

끝없는 “요요”와의 전쟁..정말 남얘기 같지 않아요..T-T

 Commented by kalechip at 2011/04/08 11:44 

안녕하세요~ 예전에 블로그 잠시 하다가 사라진 버클리 사는 사람이에요. 다시 이글루 얼마전에 조촐하게 시작했어요. 잘 지내시나요? 어디로 이사 가시나 봐요 🙂

 Commented by 당고 at 2011/04/08 12:22 

밝힐 수 없다;

저도 올해 이사 예정! 생각만 해도 귀찮은데 어찌 해야 할지-_-;

 Commented by  at 2011/04/08 15:10 

마지막 단락에서 격하게 공감.

이사 힘드시겠지만 새 집에서 또 새롭게 화이팅 ㅋㅋㅋ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4/08 17:13 

재밌게 잘 읽었어요.이사를 앞두고 계시군요.엄청 힘들겠어요.포장이사라는 것도…결국엔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작업이니…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거사입니다.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