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정녕
아침부터 부지런히 오븐을 돌려보았다. 아무래도 핵심어는 ‘오븐’이 아니라 ‘부지런히’다. 오븐을 돌렸을 수도 있고 청소를 했을 수도 있다.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게 관건이다.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돌아가지 않으면 남탓하다 지쳐 결국은 내탓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나는 그렇다. 대부분 내탓 먼저 하다가 남탓하는지도 모르겠다. 썩 잘 돌아가는게 없는 나날들이다. 원래 안 돌아가던 것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잘 돌아가는 것들까지 그래서 곤란한 기간이다. 그래서 발악이라도 하듯 몸을 움직여본다. 어쩌면 정말, 내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밀가루통이며 스테인레스 대접 등등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창 밖으로 눈이 날리는 것을 보았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요즘 놀랄만한 일을 좀 겪어서 그런 모양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져서 놀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되 그렇기 때문에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벌어졌을때 놀란다. 만약 계절로서의 봄도 이렇게 머뭇거리며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인생의 봄 같은 게 정말 오는 시늉이라도 할지 그냥 그게 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4월이라면 정말 충분히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때로 그 기대에 정말 충실하게 부응하는 것들이 훨씬 더 잔인하지 않던가.
그래도 오븐을 돌려 얻은 결과물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 조금 위안을 얻었다. 한계를 뻔히 아는 스스로의 손이 그 한계를 뛰어 넘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해주는 것을 만들어낼 때, 스스로의 눈치를 살살 보아가며 봄을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봄이 손끝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는 정황은 아니지만.
# by bluexmas | 2012/04/04 01:00 | Life | 트랙백 | 덧글(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