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재료와 전국 맛 일일 생활권화

작년 말 진주냉면을 먹었다. 여름에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일로 시간을 많이 보내 식당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만 했다. 사실 육수에 왜 고기와 해물을 같이 써야만 하는지 그 맥락 자체가 궁금했지만(그 덕분에 지방 특산 음식 대접을 받으니까-물론 딸린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의 정당성을 이해 못하겠다는 의미다), 일단 접어두고 맛을 보았는데 고기야 그렇다치고 해물향이 나기는 나는데 참기름와 식초에 가려 딱히 주연 노릇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먹다 보면 정말 ‘지역의 맛’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 맛이 결국 하나의 지향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여수에서 먹었던 서대회나 장어탕 등도 마찬가지였다. 회의 양념은 신맛이 너무 강했고, 국물 음식에서는 화학조미료 그 자체보다는 라면스프나 다시다의 맛이 났다. 각기 다른 식당에서 먹었지만 별 차이가 없었고, 결국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그냥 눈에 띄어 들어갔던 분식집에서 산 찐빵이었다.

KTX 덕분에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었다는데, 맛 또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 원인은 식초와 설탕, 참기름과 다시다다. 일단 식초와 설탕 덕분에 모든 음식이 그야말로 ‘새콤달콤’하다. 특히 냉면이나 막국수 등, 국수 음식은 이름만 다를 뿐 맛의 차이가 거의 없는데, 이게 그나마도 육수일때는 멀쩡하지만 다대기 범벅인 양념일때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진다. 이 글에서 언급했던 고성의 막국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몇 십년 전통으로 장사한다는 모밀국수집도, 또 저 진주의 냉면도 사정은 다 마찬가지다. 식초의 경우 김치의 신맛을 대체하는 데도 많이 쓰인다. 식당용 물김치의 레시피에는 식초가 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모 프랜차이즈 식당의 김치찌개도 기억하기론 식초가 꽤 자기 목소리를 냈었다.

한편 참기름은 좀 눈치가 없다. 낄데 안낄데 가리지를 못한다. 가격을 생각하면 국산은 바라지도 않지만, 중국산마저 정말 참깨로 뽑은 기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예전에 글을 썼는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작년 이맘때 곰소에서 먹은 도다리회와 거기 딸려 나온 생 해물이었다. 생조개 여러 종류와 전복을 내왔는데 거기에 하나같이 참기름을 미리 뿌려 놓았다. 활어회가 생살 씹는 것 말고 또 뭐가 있겠냐만 거기에 참기름을 더하니 한층 더 느끼했다. 딸려 나오는 쌈장 또한 조미료가 듬뿍 들었으니 다 먹고 나면 정말 참기름과 조미료맛만 남는다.

조미료의 경우는 그 존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거기에만 기대는 나약함 또는 무책임함이다. 화학조미료는 음식에 소위 말하는 ‘바디감’ 또는 두께나 여운을 더한다. 진한 육수 등으로 낼 수 있는 효과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므로, 사실 음식점이나 집에서나 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내가 만든 음식에는 넣지 않지만 파는 음식일 경우 아예 안 넣었다고 자랑하면서 아무 맛도 안 나기보다는 차라리 재치있게 쓰는 편이 낫다. 다만 그 역할이 당연히 조연에 그쳐야 되는데 주연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1인극에 내보내니 문제가 된다. 이게 차라리 그냥 화학조미료에만 기대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정말 물에 타는 것만으로도 당장 무엇인가 맛이 나는게 되는 다시다 류의 종합조미료라면 상황은 악화된다. 온갖 다른 부재료가 이미 다른 재료로 만든 맛과 섞여 그야말로 라면스프 맛이 나기 때문이다. 국물 음식을 위해 육수를 잘 내놓고 마무리에 다시다를 넣는 경우도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대중, 대중’ 거리는데 나는 솔직히 그 대중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 범위를 음식으로 좁히면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또는 걸그룹이 춤을 추는데 배경으로 쓰는 뭐 그런 것들을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그런 것들은 음악이든 안무든 옷이나 머리든 마케팅이든, 팔아먹기 위해 어디엔가 돈을 쓴다. 음식은 심지어 그렇지도 않다. 저 위에서 언급한, 맛의 일일 생활권에 기여하는 4대 재료는 노력(시간 및 마음 포함)을 거세한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것들이다. 누군가는 싸서 대중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싼 것이 진짜 싼데 얼마만큼 저 재료들이 기여를 하는지 모를 뿐더러(한마디로 저런 재료를 써서 싸게 팔음에도 폭리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 비싼 음식도 사정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지역감정이니 뭐니로 늘 말이 많은데 맛만큼은 저 4대 재료 덕분에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고 있으니 긍정적이라고 보아도 되려나? 그마저도 그 모이는 지점 자체를 생각할때 딱히 반갑지 않다.

 by bluexmas | 2013/03/14 17:02 | Tast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훌리건스타일 at 2013/03/14 17:09 

집에서 내가 만든 음식에는 넣지 않지만 파는 음식일 경우 아예 안 넣었다고 자랑하면서 아무 맛도 안 나기보다는 차라리 재치있게 쓰는 편이 낫다. 다만 그 역할이 당연히 조연에 그쳐야 되는데 주연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1인극에 내보내니 문제가 된다.

조미료에 대한 제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한 문장이네요 필력이 딸려서 이런걸 정리할때 아쉬운면이 많았는데 청탄절님 글을 보면 정말이지 열등감이 날정도로 감탄되는군요 OTL

 Commented by  at 2013/03/15 17:02

저도 훌리건스타일님 말에 동감동감 ^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3/20 13:22

^^ 조미료를 정말 너무 많이 넣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