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발견, 이태원의 ‘오월의 종’ 베이커리

뭐 의외의 발견이라는 건, 그냥 나에게만 국한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멀쩡하게 큰 길거리에 있는 빵집이 무슨 시장 골목 뒷편 할머니 닭한마리집도 아니고,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잖아? 역시나 네이버를 뒤져보니 우수수 검색 결과가 떨어지는데 통과, 그렇다는 걸 알면 됐다(그래서 여느때와 달리 가게 사진도 찍었는데 안 올리기로 했다.다 아는데 의미가 없잖아).

정말 우연히 발견하기는 했다. 나는 그 유명하다는 패션 파이브에 두 번째로 가던 길이었다. 첫 번째는 그냥 지나가다 ‘아 이거구나’ 라고 들어가봤고, 두 번째는 진짜 빵을 사러 가던 길이었다. 염두에 두고 있던 빵이 있었다. 그러다가 걷던 길 맞은 편에서 이 빵집을 발견하고, 왠지 옛날 제대로 된 동네빵집의 분위기라는 느낌에 닥치는대로 무단횡단해서 들어가보았다.
여담이지만, 나에게도 진한 동네빵집의 추억이 있다. ‘소라제과’ 라는, 주택공사가 지은 연탄불 아궁이 달린 십 몇 평 짜리 아파트로 가득찬 단지의 정문에 있던 빵집이었는데, 커다란 식빵을 썰지 않고 덩어리로 팔곤 해서, 요즘은 ‘닭가슴살 결’ 로 불리는 결을 가진 식빵을 쭉쭉 뜯어먹고 자라는 나는 소아비만이었다. 어쨌든 그 빵집에는 나름의 고객사은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어서, 거의 30년 전인 그때에도 빵 담는 비닐봉지를 열 개 모아오면 그 덩어리 식빵을 하나씩 공짜로 줬다. 그리고 그걸 받아오는 건 언제나 내 몫의 일이었다.
다시 30년 뒤의 현재로 돌아와서, 빵집에 들어서자 오븐이 들어서 비교적 큰 주방에 한 두 사람 정도 같이 움직이면 꽉 찰 것 같은 느낌의 매장이 있었다. 안 그런 느낌이면서도 은근히 빵의 종류가 많아서 옛날 분위기 나는 간식빵도 있고 식빵도 여러종류에 쿠키며 머핀까지도 있었는데, 먹고 싶었던 빵에 가장 근접한 잡곡식빵을 집어 들었다. 가격은 말도 안 되는 3천원. 벌써 빵집이 풍기는 기운이 화학첨가제와는 거리가 있기에 그 가격을 믿을 수 없었고, 사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니 식빵에는 버터와 설탕을 넣지 않고 구우신다고. 대부분이 빵집에 가면 가볍게 나누는 얘기를 마치고, 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에 바로 한 쪽 맛을 보고, 다음날 아침으로 먹어봤는데, 호두가 굵고 쿄 베이커리의 그것보다 더 푸짐하게 든 잡곡식빵은 일단 간이 잘 맞았고, 적당히 거친 식감이 좋았으며 역시 잡맛이 하나도 없었으며 먹고 난 다음에도 뒷맛이 아주 깔끔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의 깊은 풍미는 없었다는 점이다.
덩어리로 구운 빵들 가운데에 통밀빵이 있었으나 처음 갔을 때에 다 떨어져서, 며칠 전에 다시 한 번 들렀다. 시골빵처럼 생긴 통밀빵(밀가루는 전부 국산이 아니었다. 통밀가루는 옛날 러시아 연방 어느 나라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리라는 보장은 없다)을 사고, 충동적으로 ‘초코 슈크림빵’ 이라고 이름 붙어 있는, 시나몬 롤을 닮은 말은 간식빵을 하나 샀다.

좀 떨어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간식빵을 먹었는데, 이름과는 달리 초코도, 슈도 위에 살짝 얹혀있거나 반죽에 섞여 있는 것이 전부였을 뿐 말아놓은 빵 사이에 초콜렛이나 슈크림, 아니면 초코 슈크림이 든 것은 아니어서 조금 허탈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통밀빵을 먹었는데, 겉보기에도 벌써 겉껍질이 바삭하리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것처럼, 이 빵은 바삭한 겉껍질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거의 덜 구운 듯한 느낌이었다(이 빵을 더 구우면 껍데기가 바삭해질거라는 얘기가 아니라,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고). 그래서 겉과 속의 식감 대조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가운데, 빵 전체적으로는 통밀의 구수한 풍미가 적당했고, 속살만 놓고 보았을 때 통밀의 거친 느낌도 좋았다. 요즘 빵 껍데기를 바삭하게 구워내는 집들이 꽤 되는 가운데, 그 이전에 바게트같은 빵이라고 한다면 가질만한 식감이라면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 간은 적당히 잘 맞았고, 풍미 역시 잡곡식빵처럼 깊지 않은 느낌이었다(초식공룡 닮은 저 등의 뾰족한 무엇인가는 귀엽다).

나중에 빵을 먹어보고 전체적인 글을 쓰겠지만, 별 느낌도 없어 보이는 잡다한 빵들이 넘쳐나는 패션 파이브 바로 근처에 이 빵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고, 또 맛이 그렇게 깊지 않아서 아쉬운 느낌이 있기는 해도 딱 필요한 재료만 가지고 솔직한 느낌의 빵을 충분히 매력 있는 가격에 판다는 사실도 너무 좋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뚜레주르와 파리바게트 대신 이런 빵집이 있었다면, 허접한 빵굽기 시도쯤은 애저녁에 접었을 것 같다. 느낌이 좀 다르기는 해도 식사빵도 웬만큼 구색을 갖추고 있고, 오히려 옛날 느낌 물씬 나는 간식빵-내가 먹은 건 좀 허무했지만-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 by bluexmas | 2009/10/16 10:07 | Taste | 트랙백 | 덧글(17)
저번주에 사온 뺑드빱빠 빵이 냉동실에 꽉 찼어염. 흑T_T
빵도 사장님도 묵묵하고 성실하더군요.
근처에 이런 베이커리가 있는 줄으 몰랐어요;
간판이 작나요? 전 길치라 찾기 어려울 수도…ㅠㅠ
자르고 난 모습이 마치 도마뱀을 연상케 하구..
방금 전까지만해도 오늘 저녁은 컵라면이다! 했는데 지금은 빵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