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무심했던 휴가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연휴에 외국 여행을 하는 사치를 누렸다. 2월 말에 벨 앤 세바스찬이 ‘If You’re Feeling Sinister(1996)’의 30주년 기념 공연을 도쿄에서 연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인생 앨범 가운데 하나로 꼽는지라 안 보러 갈 수가 없었다(왜 한국엔 오지 않는가!). 그래서 부리나케 예매를 하고 나니 한국의 추석 연휴… 그래도 엔저 때문에 적당히 다녀왔다.

사실 요즘은 일상의 쳇바퀴가 너무 좋아서 이걸 깨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산다. 그래서 휴가고 뭐고 가고 싶지 않은 상태가 기본인데 막상 가니 너무 즐거웠다. 가는 김에 먹고 와야지 생각해서 레스토랑을 조금 무리해 예약했고 대부분의 식사가 엉망이었는데 그건 또 그런대로 생각하게 만드는지라 속으로 깔깔 웃으면서 다녔다.

무엇보다 불안하지 않아서 좋았다. 난 어디든 가면 쓸데없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는 감정에 휘말려 충동구매 등을 했는데 이번엔 그런 돌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점심 때 나와 한군데 가서 먹고 목표를 정해 어딘가 갔다가 오후에 숙소에 돌아와 좀 쉬고, 또 저녁에 다른 행선지를 정해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그런다고 안 돌아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효율적으로 힘들지 않게 다녀서, 다음에도 이런 여행을 또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늘 후회막급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여느 때의 여정과는 너무 다른 기분이었다.

주로 나쁜 의미에서 재미있는 음식들을 먹었는데 여유가 되는 대로 풀어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