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흐르는 강
.(전략)모르겠다, 나도 가끔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을까 궁금하게 생각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방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단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바꿀 수 있을지,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할 여력이 없더구나. 그러므로 만약 나를 만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냥 넘어가주는게 어떨까?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을, 내가 너와 같지 않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후략)…
* * * * *
어저께 친구한테 (전략) 앞에 전형적인 새해 인사(새해 복 많이 받아라! 어쩌구저쩌구…)를, 그리고 (후략) 뒤에 또 다시 전형적인 끝맺음 인사(그럼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어쩌구저쩌구…)를 담은 답메일을 썼다가 한참을 생각하고는 저 중간의 몇 줄을 지워버리고 전형적인 인사말만 담은 메일을 보내고야 말았죠. 그러니까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변죽만 울린 소리가 가득 담긴 그렇고 그런 이메일, 그리고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남았겠죠. 이번엔 하고 싶은 얘기를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아직도 친구와의 3차에서 정확하게 무슨 화제로 언쟁을 벌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와인 몇 잔을 마시고 그냥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뛰쳐나간 것, 그리고 자정을 넘긴 시간 분당에서 수원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알려줘도 집을 찾을 수 없다는 택시기사 덕분에 저 역시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내려서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다른 택시를 타고 돌아온 것까지는 알겠는데, 왜 그랬는지는 도저히 기억을 할 수 없더라구요(아는 사람이 있는데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어요, 민망해서).
그러나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지요. 아마도 그 이유는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소리도 없이 흘러오던 강물이 넘쳤기 때문일거라고.
친구녀석은 제가 대학교 2학년때 과를 바꾸고 나서 아무도 모르던 때부터 학교 통신동호회에도 같이 몸담던 인연 등등으로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나가면 어떻게든 얼굴을 한 번은 보는 녀석인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군대-이 녀석이 저보다 한 달 먼저 입대해서, 아침에 집에 가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죠. 여기엔 더 긴 사연이 있지만 다 늘어 놓으면 너무 삼천포로 빠질 것 같아서 넘어가야 되겠지만-를 갔다오고 복학을 한 뒤부터는 저에게 묘하게 고까운 반응을 보일때가 있어서 가끔 저는 눈치를 봐야만 했었죠(뭐 이걸 혈액형 따지기 좋아하는 분들은 B형과 A형사이의 전형적인 관계라고도 하던데, 저는 혈액형에 별 취미가 없으므로 일단 통과). 여기에 쓰기엔 참 많은 부분이 친구 녀석의 사생활이라서 그렇지만, 나름 친구 녀석의 상황에서 짚이는 구석이 있었고, 또 제 상황에서 가지를 쳤던 원인들이 몇 가지 있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누가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책임이 생기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뭐랄까… 친구지만 나이 먹어가면서 환경이 달라지고, 그러다보면 삶의 줄기가 갈라지는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일 수 있겠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저라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남을 짜증나게 하는 스타일이거나.
하여간 그 녀석과의 관계는 그렇게 아주 미묘하다고 생각될 만큼 전과는 달라졌으니, 바로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겠죠. 한때는 마음만 먹으면 건널 수도 있었던 관계 사이의 경계는 서로의 삶이 갈리면서 조금씩 더 넓어져 결국에는 건널 수 없을만큼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때가 되어서도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 해요… 워낙 소리도 없이 흐르기 마련이라서.
어쨌거나 2년에 한 번 꼴로 나갈때마다 얼굴을 봤고, 또 술도 같이 마셨지만 사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그건 뭐 자주 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렇게 짐작만 하면서 쌓여왔던 갈등이랄까, 제때제때 청소하지 못해서 쌓인 감정의 찌거기 같은 것들이 이미 그 친구와 저와의 관계를 예전과는 다른 것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이번엔 기회가 된다면 그런 얘기를 좀 까놓고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추측하는 몇 가지의 원인들이 있으니까 그걸 죽 녀석의 앞에 늘어놓고 물어보고 싶었던거죠. 지금 여기에서 어떤어떤 것들이 너의 심기를 건드리냐구요. 또 그게 대체 얼마나 너를 불편하게 해왔기에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내가 너의 눈치를 보다시피 했어야만 하는 것이냐구요. 이렇게 2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상황에서조차…이제는 너무나도 넓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녀석과 저와의 강을 아예 메꿀수도 없고 또 솔직히 그래야 될 필요도 없는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사실 저는 작은 다리라도 하나 더 놓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마음 속을 깊이, 또 더 깊이 파헤쳐서 나오는 진실을 읽어보면 결국 그런 화제를 꺼내 놓아서 갈등만 커지고, 그래서 아예 친구를 잃는 한이 있어도 저 역시 더 이상 눈치를 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것저것 다 까발리고 나면 사실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 때문인 것을, 대체 몇 년 동안 답답하게 이런 식으로 유지해야만 하는지…
그러나 아마도 저는 술에 잔뜩 취해서조차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거에요. 그건 자리에 같이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이 끼어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자주 보지 못하는 관곈데 얼굴 붉힐 필요 없다는 판단을 그 와중에서조차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죠(그러나 확실치는 않죠, 저는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녀석은 문자를 보내서 다음 날에 회사 앞으로 와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했지만, 저는 다른 약속이 있기도 했고 또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예전에 줬던 명함을 통해 회사 메일로 연락을 했더라구요. 무엇인가 들은 것 같지만 안 들은 척…
그래서 저는 어저께 메일을 썼던 거에요. 그리고 저런 얘기를 썼다가, 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다 지웠구요. 글쎄…어쩌면 그냥 쓰고 싶었던 얘기를 다 써서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그냥 다 받아들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직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저도 솔직히 지치는 것을 느껴요. 아직도 뭐 사람 사는데 인간관계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또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된다고도 생각하지만, 다른 것을 같게 만들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그 다른 것을 같게 만드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무력함을 느끼며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강이 그렇게 소리도 없이 자꾸만 넓어져가고 있는 것을… 어쩌면 곧 그도 저 너머 까만 점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 아직까지 얼굴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상태지만.
# by bluexmas | 2008/01/12 14:04 | Lif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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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님: 그냥 강가에 누워서 잠들고 싶어요. 일어나면 좁아져있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그렇겠죠.
비공개 3님: 님의 나이에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맞다고 봐요. 그러나 한 10년 쯤 지나면 또 상황이 많이 달라지죠…
비공개 4님: 제가 말하려는게 님이 말씀하시는거랑 같은 맥락이에요. 저는 군대 갔다와서 안 갔다왔던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지만, 부러워하는 것과 미워하는 건 다르니까요. 제가 그랬다고 안 갔다온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군대 갔다와야 사람 된다고 말할 필요도 없죠.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더 자주 들러서 아는 척 더 많이 해 주셔도 돼요. 저도 비공개님의 영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으니까요. 단지 제가 다른 분들 블로그를 잘 못 들러서 그게 문제죠. 더 많이 소식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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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님: 저는 갈수록 싸가지 없어져서 이젠 제가 잘못했다고 잘 생각 안 하게 되더라구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은 생기기 마련이죠. 누구냐, 언제냐가 더 관건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