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요
저녁을 먹고 또 DVD를 한 편 보고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빗방울이 홈통을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술을 마셔야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3불도 안 하지만 맛있다는 추천을 받고 사다놓은 Sauvignon Blanc 한 병을 부랴부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한 시간을 간신히 기다려 따서 반 병 정도를 마셨어요. 겨울에 서울에서 사온 김연수의 소설을 슬렁슬렁 읽으면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마지막에는 대문을 열어놓고 아이스박스에 걸터앉아 잔을 비웠죠. 어째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마지막 한 모금은 그냥 남겨두었어요. 새벽이라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데, 죽은 줄 알았던 마당의 나무는 벌써 잎이 많이 자라서 그 바람에 나부낄 정도가 되었네요. 정말 죽은 줄 알아서 또 나무는 어떻게 심어야 되나,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게으른 주인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자라는 나무가 정말 고마울 지경이에요. 사람이든 나무든 몸이든 마음이든, 관심을 쏟아주지 못하면 자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끔 예외는 있는 모양이에요.
# by bluexmas | 2008/04/27 15:50 | Lif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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