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잡담

오랜만에 좀 일찍 자려한다. 이번 주 내내 가장 일찍 잔 시간이 새벽 한 시 반이었고, 보통이 두 시, 아니면 세 시인 적도 있었다. 살다보면 열 두시쯤 자는 날도 한 달에 하루 이틀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사람이 좀 살지…

어젯밤, 개인적으로 작은 역사를 이루었다. 뭐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사람들이 말했으니 밤에 역사를 이루었다는 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건덕지는 별로 없겠지만, 어젯밤의 역사는 나와 누군가가 아닌 나와 노트북에 의해 이루어졌고 체액의 교환도 절대 없는 아주 메마른 종류의 것이었다. 결국 다섯 시간 조금 넘게 자고 출근했지만, 마음만은 흐뭇했다.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준비도 하고 있다. 그냥 아직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비교적 제 시간에 퇴근해서는 김치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하루 노트북을 접어놓은 채로 휴식을 취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시작이다.

뭐 계절대로라면 김장이라도 해야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혼자 사는데 배추 두 포기만 담궈도 먹다가 버리는 마당에 김장도 그렇고 담궈봐야 반 이상 실패하는 포기김치도 그렇고 해서 간만에 총각김치나 담궈볼까 하는 마음으로 수퍼마켓에 들렀는데 언제나 그 수퍼마켓은 총각무와 열무를 야채칸에 나란히 진열해놓는터라 난 옆에 놓인 열무를 보고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열무를 몇 단 집어들었는데, 이 열무가 옆에 놓인 총각무와 거의 차이가 없어보였다. 보통 열무는 무청이 훨씬 절 자라고 연한데 이건 그냥 총각무인 것 같은데 밑에 달린 무를 다 잘라버리고 열무라고 속이는 듯한… 어쨌든 집어들고 계산을 하는데 이런 걸 사면 100% 계산대의 아줌마가 뭐에다 쓰려고 사냐고 물어보고, 나는 둘러대기 싫어서 김치담근다고 대답하면 또 100% ‘한국남자가…’ 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가끔은 다른 계산대의 사람들 시선도 쏠린다. 나는 이런 분위기 싫다. 남들 보라고 밥 해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오늘 계산대의 아줌마와 나는 열무가 너무 억세보이는데 김치 해 먹을 수 있을까, 라는 지극히 주부스러운 우려를 30초간 나눴다. 그 아줌마는 심지어 내가 산 쑥을 보고 국을 끓여먹을거냐며 놀라는 모습을… 봄에도 못 먹은 연해보이는 쑥이 있어서 얼른 집었는데,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걸까, 참…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헛갈릴때가 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질까, 그때는 왜 아무런 말도 안 하신거였는데요? 라고 물어볼 수 있을.

 by bluexmas | 2008/11/14 13:06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로이엔탈 at 2008/11/14 15:02 

한국남자가 요리하는게 어때서 그러는 걸까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1/16 15:13 

그러게요 전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본의 아니게 돌연변이가 된 기분이에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