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이 그렇게 궁금해?
이사왔던 날 인사를 나눈 옆집 여자아이 엄마는 처음부터 혼자 사느냐고 묻더니, 지난 주엔가 엘리베이터에서 두 번째 마주쳤을 때에는 어디에서 살다 왔냐고 물어보았다. 나? 뭐 내가 물어볼 게 있나. 궁금한 것도 없는데. 알바로 영어나 가르치게 아이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들더라. 보니까 학교 들어갈 나이도 안 된 것 같은데 영어 배울 필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사실 우리말 체계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 하는 말도 안 되는 영어 조기 교육 절대 반대주의자).
요즘 어린이들 답지 않게 친절하고 싹싹한 헬스클럽 직원, 특히 팀장으로 알고 있는 남자는 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일찍 퇴근하셨냐, 무슨 일 하시냐, 오늘은 일 안 나가셨냐를 물어봐서 결국 그다지 내키지 않는데 지금은 논다고 얘기했다. 얼굴에 딱 당황하는 기색이 스치더라.
어제 소독을 하러 온 아주머니는 채 5분이 안 되는 소독 시간 동안 아무 짐도 없어 휑한 내 집을 보더니 대뜸 이 넓은 집에 혼자 사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아 #발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소독이나 잘 하고 가세요, 라고 싸가지 없게 받아 칠 수는 또 없지 않을까?
내가 뭐 사생활을 중요시한다고 모두가 믿고 있는 나라-사실 전혀 그렇지도 않구만-에서 몇 년 살다 왔다고 이런 데에 더럽게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전부터 그렇게 해야 될 필요가 없는 사람과 사생활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사생활을 향한 호기심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런 종류의 호기심은 사실 사람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에서 우러난 문답이 오가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가 아닌 어떤 외부 조건으로 인식되는 존재로 탈바꿈되어 버린다. 나는 내가 아니고 혼자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사람이거나, 어떤 일을 하거나 또 안 하는 사람이다. 아무도 인간성 따위의, 좀 더 인간 본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 그렇고 그런 존재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인류는 아주 바람직한 종류의 직업을 생성했다. 그것을 우리는 ‘연예인’ 이라 부른다. 이제는 직업에서 ‘공인’ 이라고도 불리워지는 하나의 종족 또는 족속으로 진화한 듯한 연예인들은, 자기를 아낌 없이 까발려 보여주는 것으로 재정적인 윤태함, 우리가 흔히 ‘돈’ 이라 일컫는 것을 얻게 된다. 정말 좋은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직업이 가장 훌륭한 직업 아닌가, 이 풍진 세상에서.
# by bluexmas | 2009/05/31 23:37 | Lif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