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이사벨 더 포’러’하우스-농반진반의 스테이크

스테이크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지칭하는 스테이크는 부위에 상관없이 두께가 1.5 센티미터는 되는, 그래서 아주 높은 온도에서 겉은 탄 것 아닌가 싶게 지지면서 속에는 붉은색이 남아 있어 보기에는 썩 맛있어 보이지 않는 고깃덩어리를 의미한다. 정장에 중절모를 쓴 남자와 위스키, 그리고 담배연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스테이크,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라면 사실 그런 종류의 스테이크가 발붙일 자리가 없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리 특유의 고기 구워 먹는 문화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방법 나름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 하나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테이크의 경우,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감의 차이이다. 겉면은 센 불로 지져서 잘라 입에 넣고 씹으면 조금 과장을 보태 ‘와작와작’하는 소리가 날 정도지만 안쪽은 부들부들해야만 한다. 불 뿐만 아니라 고기의 두께도 중요하다. 별 생각없이 살 수 있는 고기라면 이런 정도의 두께로 잘린 경우는 드물다.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는 그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지 않는다. 숯불은 물론, 가스불이라도 우리나라의 고기 구워먹는 방식으로는 고기를 불에서 입으로 바로 가져갈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고기가 너무 뜨거워 맛을 잘 모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먹는 회식자리라고 생각해보자…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불에서 입으로 넣기 바쁘지 않나?). 게다가 그 정도의 두께라면 마이야르 반응, 또는 카라멜화로 인해 잘 지져진 겉면과 그에 따른 식감의 대비는 맛볼 수 없다(물론 부위에 따라 정말 두꺼운 덩어리를 구워서 자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정도로 고기를 지지면 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불에 올려놓지 않는다. 고기를 익히는 정도에 따라 다른 의견-어딘가에서는 웰던으로 바싹 익혀야 한다며 주인이 그 상태로 구워 손님에게 준다는 포스팅을 본 적 있다-이 있는 것 같던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나의 글 답게 사설이 길었는데, 요지는 그거였다. 그런 문화의 특성을 생각해보았을때, 우리나라에서 스테이크를 제대로 낸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만약 사람들에게 같은 돈으로 같은 양의 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을 택할까?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스모티 살룬의 사업자가 압구정동에 스테이크 하우스를 열었다고 해서 가보게 되었다(한참 번지고 있는 “수제”버거의 유행이나 스모키 살룬에 별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만큼 기대를 해야될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시피 했다). 거의 한 달쯤 전의 점심시간이었는데, 시커먼색에 가죽 위주의 인테리어가 뉴욕 같은 곳의 스테이크 하우스 분위기와 똑같았지만 공간 자체가 그렇게 넓지 않아서 그런지 멋있다기 보다는 답답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안쪽에 공간이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들어갔을 때 손님은 나 말고 남녀 한 쌍 뿐이었는데 내가 안내받은 자리는 무슨 배전반 같은 것을 가려놓았는지 벽이 튀어나와 있는 곳이어서 뒤로 여유가 별로 없었다. 곧 웨이터가 액자에 담긴 메뉴를 들고 와서 깜짝 놀랐다. 대강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메뉴를 만들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일단 무겁기도 하고 액자에 담겼다는 그 느낌 때문에 손님이 손에 쥐고 보면서 생각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이 음식점을 설정하면서 염두에 두었을거라 생각하는 뉴욕의 초 일류급 스테이크 하우스들에서 이렇게 메뉴를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곳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그곳을 간 목적은 단 하나, 한우 필레 미뇽을 먹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론상으로는 우리나라 고기집에서 그렇듯 무게 단위로 달아 파는 곳이면서도 실제로 손님들이 무게에 따라 고기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최소한 그날을 생각해보았을 때는 아닌 듯 보였다. 필레 미뇽을 주문하려 하자 팔 수 있는 최소 단위가 400그램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도 미국산이라고 했다. 미국산이라는 데 거부감은 없는데, 가격에 아주 큰 차이가 없었다. 정말 좋은 프라임급이라면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딱히 꼭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무게 단위의 가격은 그런 상황에서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부위별로 주문할 수 있는 최소 단위-예를 들면 필레 미뇽의 경우는 200그램이었나?-가 메뉴에 명기되어 있기는 해도) 실제로는 고기 수급에 따라 정해진 무게의 덩어리 몇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고기 400그램을 못 먹을 이유도 없었지만, 필레 미뇽이라는 부위가 기껏해야 지름 7~8센티미터짜리의 긴 덩어리인데 그게 400그램이라면 대체 얼마나 길게 나올까 싶었다(내가 사서 집에서 구워먹었던 필레 미뇽은 300그램 이하의 덩어리들이 아니었나 기억된다). 사실 그건 사소한 문제고, 더 중요한 건 사실 필레 미뇽이라는 부위는 지방도 없고 운동을 하는 부분이 아니어서, 부드럽기는 부드럽지만 정말 고기맛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위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인터넷을 뒤져보니 “필레 미뇽은 소스와 함께 일반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메뉴지, 정통 스테이크 하우스에 속하는 건 아니다”라는 글도 나온다). 그래서 금방 질려버리는 부위를 당장 내키는 것보다 더 많이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다른 부위를 물어봤으나 딱히 준비된 것이 없고, 채끝인가 하는 부위를 물어보았는데 구제역 때문에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결국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를 떴는데, 딱히 기분 나쁠 것은 없지만 들어왔다가 나가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무 생각없이 나온 상황이기 때문에 대체 뭘 먹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갤러리아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태원의 매장은 생긴지가 꽤 되었다고 들은 기억이 나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쪽도 사정은 별 다를 게 없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450그램짜리 채끝(결국 뉴욕 스트립?), 그것도 호주산 ‘와규’ 라고 했다. 사실 상황이 이쯤 되면 경험을 위해 먹는 의미는 있지만 맛을 위해 먹는 의미는 없어지게 된다. 시간은 점심을 거의 넘겨 배도 고파지고, 결국 450그램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터덜터덜 이태원으로 향했다. 대강 어딘지 감이 잡히는 위치였는데도 전화 받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니 더 헛갈려서, 해밀턴 호텔 뒷골목을 몇 번이나 헤매다가 마침내 음식점을 찾았을 때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문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밖에 없었으므로 그걸 시키고, 양파링이 어떤가 맛을 보고 싶어서 시키면서 혹시 감자랑 섞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내오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식전 빵이라고 나왔는데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종류의 빵은 정확하게 이런 종류의 스테이크 하우스에 속하는 건 아니었다. 스테이크 하우스라면 고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고기가 좋다면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도 그것과 격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고기를 둘러싼 나머지들이 거의 모두 그렇지 못했다.

피클 역시 마찬가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병조림의 티가 너무 나는 때깔이었다. ‘가게에서 직접 담근다는’ 알타리 무 피클을 냈는데 솔직히 그 정도의 알타리 무라면 보통 음식점의 피클처럼 설탕을 많이 넣을게 아니라, 우리나라 짠지처럼 담갔어도 스테이크랑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가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째 하나의 마케팅이나 이미지를 위한 전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온 감자칩… 이 감자칩만 놓고 보면 ‘아니 누구를 바보/호구로 알고?’라는 대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는 상황이었다. 이건 뭐 튀김기 밑에 굴러다니는 쪼가리들만 모아서 낸 수준이었다. 색깔이며 크기며… 기름에 쩐 상태까지, 이런 건 아무리 ‘좀 내올께요’했다고 쳐도 손님에게 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랬던 것은 공짜가 아니라, 어떤 스테이크 하우스나 그릴하우스에서 내는 ‘양파링+프렌치 프라이 콤보’와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좀 어이없었지만 내온 총각이 너무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어 뭐라고 할 여지가 없었다.

거대한 스테이크. 식기 전에 먹으려고 사진을 대강 찍었더니 흔들렸다. 주문을 받을 때 아무 것도 묻지 않아서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하는 사람을 붙들고 ‘미디엄 레어로 잘 지져서’ 내달라고 했다. 수입산은 들여올 때 이미 숙성이 되어 있고, 국산은 팔당에 있는 창고에서 숙성을 시킨다고 했는데, 배도 고프고 해서 잘 먹었지만 ‘그래서 숙성을 시킨 고기의 맛은 어땠는데?’라고 묻는다면 ‘음 그게…’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나올 상황이었다(스테이크의 숙성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 보고 싶다). 식감은 괜찮았고, 무엇보다 레어에 가까운 가장 안쪽 부분이 차가운 것이 인상에 남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이 스테이크가 굽기 전에 상온에서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고기를 잘 지지려면, 표면에 물기가 없어야 하고 상온에 한참 두어 온도차 역시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음식점이 우리나라에서 지닐 수 밖에 없는 특수성과 회전을 고려해본다면 고기를 상온에 꺼내놓고 손님이 오는 것만을 기다릴 수도 없으므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스테이크를 거의 다 먹었을 때쯤, 고기를 뒤집어 보았는데 윗면과는 달리 밑면은 지져놓지 않은 상태라, 나는 다 먹고 나서 그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밑에서 불이 올라오면 육즙도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그 육즙을 가두기 위해서 윗면만 지지면 된다’ 였다. 물론 ‘육즙을 가두기 위해서 고기를 지진다’는 말도 안되는, 농담과 같은 수준으로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인 주방의 미신과 같은 것이다. 고기를 지지는 것과 육즙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대답이 가지고 있는 느낌은 이 스테이크 하우스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과도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 한 구석으로는 ‘아 제대로 된 스테이크 하우스를 만들고 싶구나’라는 식으로 이해되다가도 고기 자체를 빼놓은 나머지는 정확하게 추구하는 바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 사람을 헛갈리게 만든다. 어차피 이날 먹은 건 꿩 대신 닭이고, 압구정동에 한 번 더 가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갔다가는 또 못 먹고 나올 확률이 높으므로, 여기는 정말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와 같이 포터하우스 먹기 번개라도 쳐야할 것 같다. 물론 고기 50그램에 최소 7,500원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참, 이태원에서 먹고 나오면서 “구제역 때문에 고기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가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뇨 그런 거 없는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by bluexmas | 2010/06/14 10:17 | Taste | 트랙백 | 덧글(17)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6/14 10:37 

스테이크의 육질을 저렇게 세세하게 표현하시다니…블루마스님 카메라도 특별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글을 읽으면 그 맛이,간접적 경험의 범위를 뛰어넘네요.

저 고풍스런(?) 실내장식은 유럽의 고성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듯 한걸요.ㅋ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10/06/14 10:47 

지지는것과 Seal은 다른 의미인모양이예요?

 Commented by 제마 at 2010/06/14 10:59 

저도 압구정점은 정말 가보고 싶던데 번개 한번 치셔도 ^^

전 소연골을 소스로해서 먹는 스테이크가 궁금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나녹 at 2010/06/14 11:22 

스테이크는 안먹어서 잘 모르겠지만, 튀김에 민감한 입장에서 저 후라이는 좀 그렇네요…내일 air-baked 후라이 먹으러갑니다~ -_-v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6/14 11:44 

뭐 좋은 스테이크하우스가 있으면 좋겠는데, 쉽진 않나 봅니다^^;;

저번에 간 송도의 씨푸드뷔페에선 아웃백보단 나은 스테이크가 나오더군요. 저같은 인간이 스테이크하우스 문화발전을 가로막나 봅니다;;

 Commented by shortly at 2010/06/14 14:20

오. 갯벌타워? 인가 위에있는 그 시푸드 뷔페를 가셨나요? ^^;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6/14 23:40

네, 타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21층에 있는 뷔페에 가봤습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6/14 11:51 

하여튼…글을 다시 읽고 또 재차 읽어보았지만 ‘스테이크’요리다—싶을 정도의 요리가 없긴 하죠.

제대로 된 건 내가 만들어 먹는 수밖에.켜켜켜

게다가 맛에 비해 가격은 왜그리 비싸기만 한 건지.!

 Commented by 러움 at 2010/06/14 12:11 

고기를 지지는것과 육즙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에 기절.. 흑흑 몰랐어요. ㅠㅜㅜㅜ

마지막의 “아뇨 그런거 없는데요.”는 진짜 뭔가 심금을 울리는군요 음..(…)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10/06/14 12:35 

…….으으으으으음. =”= 묘하게 거슬리는 집이로군요…..;;;;;

저도 몇 년 전에 한국가서 숙성 안한 그냥 고기 구워나올 건데 집에서 제대로 구워먹을란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흐음흐음…

 Commented at 2010/06/14 14: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6/14 17:02 

술안주론 괜찮을 것 같은 흉기감자…최근에 육즙을 가두려고 고온에 지졌더니 순식간에 증발 되어버렸어요…도화지 맛 소고기..ㅠㅠ

 Commented by 밥과술 at 2010/06/14 18:34 

아, 대한민국에서는 김치, 단무지 없는곳에는 어딜가나 따라다니는 저 놈의 할라피뇨 피클즈…

근데 사진을 잘 찍으셔서 문장없이 보면 각각 따로따로 맛있게 보이네요…스테이크 집과 관계없이…

 Commented by momo at 2010/06/15 02:27 

지지는것과 육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게 정말예요??? 육즙을 가두기 위해 센불에서 구운후 오븐에 넣는다고 들었는데말임다….

 Commented at 2010/06/15 21: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해피다다 at 2010/06/15 23:21 

아니, 누구를 바보/호구로 알고? 는 아주 많은 식당에서 자행되는 행동인 듯 합니다, ㅋ

 Commented by squamata at 2010/06/16 07:27 

아, 혹시 고기집에서 고기를 한 번만 뒤집어야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는단 것도 낭설인가요?

막입이라 육즙까진 모르겠고 여러 번 뒤집으면 지나치게 속속들이 골고루 구워져서 싫기는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