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의 사정
사람들이 노는 걸 좀 보고 싶어서, 이 좋은 날씨에 나도 나들이를 나섰다. 사람들은 놀러 나오고, 그 노는 사람들을 보는 건 내 일이다.
금요일
올림픽 공원-서울숲-홍대-(ㄹㄷ;;;)-신촌-연남동-압구정동-…의 동선이었다. 선수촌 아파트 상가의 #가네에서 김밥을 두 줄 시켰는데 가격은 5,500원. 김밥치고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굴러다니는 상자를 보니 공장에서 만드는 지단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나는 지단을 포함한 모든 재료는 그래도 김밥집에서 다 준비하는 건줄 알았다. 지단의 명칭이 더 기절하게 만들었는데, 무려 ‘에그리아 웰빙 지단.’ 며칠 전 쓸데없이 짜증나게 만든 ‘애플시아’보다 더한 작명 센스에 웰빙, 사실은 거기에다가 그 상표가 ‘인민체’로 쓰여있었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정말 대박이었다. 먹는 동안 아저씨가 상자를 뜯길래 계속 구경했는데, 지단이 단무지처럼 진공포장되어 있었다. 어째 집에서 만드는 지단보다 훨씬 더 많이 부풀었더라니…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많이 부풀려서 지단을 만들면 같은 수의 계란으로도 더 많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무려 웰빙 지단이신데 그런 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걸 보니 밥맛이 떨어져서 먹다가 남겼다. 그 뒤로 사정없이 올라오는 향미증진제의 흔적…차라리 김밥 기계를 만들지, 그런 식으로 만들어서 사람 손길이 깃든 것이라고 선전하지 말고. 햄버거랑 뭐 별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뭐 사실 다르지 않지 요즘 현실에서는. 어쩌면 더 못할지도?
서울숲에는 지난 봄에 마라톤 뛸때 맛만 보고 그 뒤로는 처음 가 본 건데, 난장판이었다. 자전거에 치어 다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난폭하게 몰았다. 오늘 저녁에 들렀던 양재 시민의 숲에 비해보면 만든 티가 확 나는 느낌이랄까.
이건 그 문제의 “눈에는 꽃사슴, 코에는 똥사슴.” 아이 하나가 먹이를 내미니까 입을 열심히 들이미는 와중에 뒤로 떨어지는 그 구슬과 같은 것들은 무엇이냐… 꽃사슴은 빠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충해줘야 아름다운 꽃무늬를 유지하고 살 수 있는 듯?
그리고 이후의 기록은… 그냥 사생활로 남겨두고 싶다-_-
일요일
(이렇게 보면 좋아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맥락을 보면 정말 아스트랄하다… 공원인데 사람이 쉴 데는 없다;;;)
오산- 여의도-교보 본점-종로 4가-효자동-월곡동-내부 순환로-양재 시민의 숲-양재천 아무개 바-오산
여의도 공원에는 태극기와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물론 왜 있는지 모른다. 그럴때 ‘뜬금없다’라는 말을 쓰면 되겠지. 한바퀴 돌고 63빌딩에 생겼다는 Eric Kayser에 빵을 사러 갔다. 당분간 빵을 웬만하면 만들어 먹기로 했는데, 한 번 정도는 맛을 봐야 될 것 같았다. 자세한 건 먹어보고 올리기로 하고… 아주 큰 깡빠뉴를 구워서 팔지는 않고 시식으로 나눠주는데, 그건 일단 기대를 밑돌았다. 다음엔 홍대로 향해 차를 대놓고 광화문쪽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날도 좋고 걷기도 싫고 차도 별로 없어서, 결국 미친척하고 시내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다. 주차를 대체 어디다 할지 몰라서 한참 헤맸는데, 광화문에 가서야 살 책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대놓고 물어보니 오늘은 책을 사면 무조건 두 시간 무료라고 하더라. 그래서 종로 4가, 세운상가에 만들어 놓은 그 이상한 “공원”을 보고, 버스를 타고 신세계에 들렀다가 다시 걸어 교보로 귀환, 책을 샀다. 그리고는 마장동으로 순대국을 먹으러 갈까 하다가, 순간 마음이 바뀌어 내비게이션으로 찾아 효자동의 백송에서 저녁을 먹었다. 깔끔한데 왠지 요령은 없는 느낌의 곰탕이었다. 그리고는 차를 그냥 북쪽으로 쭉 몰아 어디까지 가나 보다가, 예전에 한 번 가봤던 월곡동이 나오길래 내부 순환로를 타고 강남으로 내려와 양재 시민의 숲에 들렀다. 주차비를 2천원이나 받길래 그 돈이 아까워서 별 것도 없는 동네를 싸돌아 다니다가, 이름만 들어보았던 천변의 아무개 바에 갔는데, 거기에도 뭐 별 거 없었다. 무지하게 비싸다는 것 밖에는… 술은 또 마실 수 없어 8천원주고 페리에를 한 병 마시고 왔다. 바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있었는데, 당연히 들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대화를 잠시 즐기다가 나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좀 즐겁게 며칠 지냈다. 연휴 기간에는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뭐 일도 드문드문했고, <탑 셰프>도 여러 편 즐겁게 보고(요즘 디저트 시즌을 하는데, 생각보다는 별로 재미가 없더라. 직화조리가 별로 안 나와서 박진감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늉만이지만 정리도 하는 등, 비교적 알차게 보냈다. 어차피 출근은 안 하니까, 연휴 끝이라고 크게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거의 모든 사람들의 부담이 절절이 배어든 공기가 평소보다 무겁게 흐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다. 내일은 집에서 조용히 일이나 해야겠다. 심기 불편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꽤 많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심지어 일을 아예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옆집 아기 엄마마저 부럽다고 그러는데… “출근할 차비 못 벌어서 그냥 집에서 일해요T_T 남의 속도 모르고.”
잡담, 올림픽공원, 서울숲, 여의도공원, 교보문고, 양재시민의숲
# by bluexmas | 2010/09/27 00:12 | Life | 트랙백 | 덧글(5)


이제 못사먹겠네요.
갑자기 닭들이 먹을 항생제 냄새가 나는 듯 해요.
#가네 김밥은…가격은 비싸지고 있는데 그만큼의 value가 부족한 것 같아요.
돈 몇천원에 무슨 밸류를 찾나,싶지만
천오백원에 목숨걸고 김밥 만드는 김밥 패러다이스 같은 데를 보면 확실히……


페리에 8천원받는 곳도 있군요;;




넘어져서 팔꿈치에서 피가나도 애들은 놀이터를 좋아라 하더군요.


언제부터인가 천원짜리 김밥 프랜차이즈가 대유행을 시작하면서. ‘김밥’에 대해 사람들이 매기는 가치는 사실 햄버거, 심지어 끓여 파는 라면보다 더 낮아졌죠.
지금은 대부분 1,500원으로 올랐지만 그 가격에 김밥 팔라는 것도 사실 굶어죽으란 얘기죠.
집에서 김밥 말아 보신 분들은 이해를 하실 거예요. (게다가 재료값만 1,500원이 아니라 젓가락, 단무지, 앉아서 먹을땐 국물도 주죠. 가게도 유지해야죠. 직원 월급 줘야죠. -.-;)
그러니, 김밥이 주력 상품인 가게들이 안 굶어죽기 위해 쓰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뭐,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싫으네요. ;;; 한때 중국산 찐쌀? 파동도 있었었는데 솔직히 그런 B급 재료 안 쓰면서 그 가격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죠.
그렇다고 가격을 더 올리면? 가격메리트 때문에 그런 프랜차이즈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 돈 내고 안 사먹으려고 할 거고, 그럼 가게 문 닫아야 하는 거고요. 돌고 도네요.
결국 가치가 있는 음식을 그만한 돈을 내고 먹을 때 제대로 된 외식이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아님 웬만한 음식은 다 집에서 해먹는 거구요.. (저처럼.. –;;;)
하지만 김밥집 아저씨가 달걀지단 상자를 손님들 보이는 곳에서 아무렇게나 놔둔 것은 참 유감이네요. 센스가 없으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