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보다 양을 추구하는 음식 문화
재활용. 원 출처는 여기.
점심을 먹고 집 앞 사거리에 나갔다 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새로 열었다는 밥집의 광고 현수막이었는데, 왼쪽 귀퉁이에 떡 벌어지게 차려놓은 한 상 사진이 있고 “한정식 만원!”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현수막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일주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사진은 찍지 못했다.
물론 이런 현수막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것이 이러한 종류의 음식점 광고 아닌가? 그런 광고 현수막들은 대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엄마의 손맛’ 과 같은 정성/감성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2. 싸고 양 많은, 흔히 말하자면 ‘가격대 성능비’를 강조한다. ‘무한 리필(이 말 자체가 정말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왜 꼭 ’리필‘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가?)’을 가게 앞에 써 붙여 놓은 밥집들도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은 싸고 양 많은 음식을 좋아한다. 거의 예외가 없는 듯하다. 한 편으로는 본능적인 욕구라는 생각도 든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음식점 관련 글을 보면, 먹은 사람이 확인해주지 않을 경우 꼭 덧글로 질문이 달린다. “이 집, 양 많이 주나요?” 대체 얼마나 많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물론 양이 많은 음식 그 자체에도 나름의 미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음식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양으로 치환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질=양’인 것이다. 화폐가치로 환산하다면 최근에 벌어진 통큰치킨 ‘사건’의 맥락도 결국 같은 것이다.
양식의 코스처럼 한식을 내는 음식점의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들었던 농담이 있다. 정말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나오는 한정식의 단가 대부분이 결국, 음식을 접시에 담아 상에 올리는데 들어가는 인건비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 음식점의 경우 한 번에 한 접시씩 나오는 음식으로도 배가 부른데, 꼭 마지막에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나온다. 우리 음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코스로 나오는 음식과 마지막에 나오는 밥은 딱히 어울린다고 하기 어려웠다. 이 점을 지적하자 셰프는 어떤 음식이 얼마나 나오는가에 상관없이 손님들이 밥은 꼭 먹기를 원한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렇게 우리의 식생활은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밥과 반찬 사이의 위계질서이다. 탄수화물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밥이 우위를 점하고 있고, 언제나 단백질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백질 섭취의 원천이 되는 반찬이 밥을 보좌한다. 웃기는 건 우리 밥상이 이러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밥의 질이나 양으로 자기가 먹은 식단의 우수함을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도 먹은 반찬의 양을 먼저 평가하고, 그 다음에 질을 평가한다. 하지만 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영화 감상으로 치면 주연배우의 외모나 연기보다 조연, 또는 엑스트라의 인원수나 아니면 가뭄에 콩 나듯 연기로 그 영화를 판단하는 꼴이다.
이러한 특성을 적극 활용해서 우리 음식(또는 한정식)을 파는 많은 집들이 반찬의 가짓수로 손님을 압도한다. 집이 오산인데, 안성으로 향하는 국도를 타면 길거리에 꽤 많은 한정식집들이 있다. 어디를 들어가도 나오는 음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만원 안팎의 상을 시키면 반찬이 최소한 열 가지는 깔리는데, 대부분이 간장을 바탕으로 만든 밑반찬이다. 밥을 세 공기는 먹어야 반찬을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짜다. 조금 더 비싼 음식을 시키면 단백질 반찬이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인스턴트 떡갈비와 같은 대량 생산 제품을 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반찬을 밥과 한 그릇에 담은 것과 마찬가지인 비빔밥을 시켜도 거의 비슷한 반찬이 상에 깔린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건강에 대해 우려하기 이전에,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음식은 한편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절대로 다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남긴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음식물 재활용에 관한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많은 식기들을 씻기 위해 드는 물이나 세제는 자질구레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 것일까?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경향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편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에 굳이 우리의 국민성 등을 빌미로 탓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는 아예 알아서 미친 듯이 많은 양을 내와서 사람을 압도한다. 그렇게 풍성한 양의 음식이 사람에게 주는 심리적인 안도감도 마케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햄버거에 곁들이는 프렌치프라이나 탄산음료의 양을 늘인 ‘수퍼사이즈’를 내놓는 것도 소비자 심리를 철저하게 연구해서 얻은 결론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양적 팽창 선호의 음식 문화가 가져온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패스트푸드 제국(Fastfood Nation)>과 같은 영화를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끔찍한 식품 대량 생산의 현실은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현실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수요자가 애초에 원했거나 아니면 공급자가 그런 여건을 만들었거나에 상관없이 팽창한 수요에 맞추기 위해 정상적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이나 절차를 무시하려는 시도가 대량생산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분명히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보다 많은 양을 내려고 한다면,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닌가?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당신이 회사를 다니는데, 수당도 택시비도 받지 못한 채 야근을 계속한다. 보너스도 따로 주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착취당한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 당신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킨다. 음식값을 내지만, 그 화폐가치보다는 더 많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한다. 물론, 당신은 이 두 상황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당신이 손해를 보는 상황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손해를 안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 by bluexmas | 2011/03/02 11:09 | T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