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멸치
“엄마, 내일 완주 부상이 멸치니까 조금만 버티셔요.”
일을 마치고 강을 건너면서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며칠 전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아버지가 강연 가셨다가 드셨던 잔치국수 얘기를 자꾸 꺼내시는데, 멸치가 없어서 못 만들고 있지 뭐냐. 자식이 돼서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자리 잡고 못하는 것만으로도 죄송스러운데, 용돈은커녕 멸치도 제대로 못 드시게 하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거나마 좀 마음껏 드시게 하려고 내일의 마라톤을 준비했다. 죽을 힘을 다해서 꼭 완주하고 부상인 멸치를 받아서 반은 부모님 드리고, 나머지는 세 등분 해서 내가 1/3, 어른이 1/3, 그 나머지는 그동안 사람구실 못하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드리려 한다. 그래도 한 50마리는 남겠지. 마리마리마다 목에 금색 실로 리본을 묶어서 증정할 생각이다. 90도 배꼽인사와 함께.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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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다 했다. 보통 달리고 나서 탄수화물을 공급하기 위해 먹을 건 스스로 만들어 챙겨왔는데, 어쩌다보니 이번엔 다 내보내고 남은 게 없다. 그래서 오는 길에 윤씨밀방의 만두를 “하프 더즌” 사왔다. 혹시나 해서 뒤져보니 지난 번에 맛보고 남은 파운드케이크 반토막이 냉동실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뭐 그거라도. 번호표도 다 달았고 짐도 다 챙겼으니 이제 플레이리스트만 새로 만들면 된다. 내일 할 일의 준비를 주중에 나눠서 하느라 달리는 것보다 더 빡셌다.
12월인가 1월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사실 어느 정도 준비는 된 셈이다. 다만 10km이상 거의 뛰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몸이 어떻게 나올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강변을 따라 쭉 달리는 거라 솔직히 지루할 것 같다. 어차피 어느 정도 지나면 경치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경사도 없고 완만한 곡선주로라서 눈보다 몸으로 느끼는 지루함이 클 것 같다. 최근에 마라톤화라는 아주 비싼 운동화를 샀지만, 사실 그건 나같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는 쿠션이 너무 없어서 신을 수 없다. 그래서 실전에는 오래된 운동화를 신는다. 아마도 이번 마라톤이 그 운동화의 은퇴전이 될 것이다. 쿠션이 많이 줄어든 느낌인데 마음에 드는 건 바다 건너에만 있는 듯 해서 바꾸지 못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작년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달리기 같은 거 이제 좀 그만 해라 뭐 이런 얘기도 들었는데, 그 시도들은 아무래도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므로 다시 달리기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완주하고 나서 프로그램을 좀 찾아보고 가을에 춘천마라톤을 뛸 수 있는지 결정할 생각이다. 아니면 내년 봄에 도전하던가. 그때 ‘풀코스를 뛰면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글쎄, 돌아오지 못할 강은 벌써 많이 건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 정도 더 건넌다고 뭐 달라질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나에게 달리기 또는 다른 운동은 이미 오래 전에 육체의 안녕 같은 걸 위한 차원을 넘어섰다. 이건 모두 마음의 안녕을 얻기 위한 일종의 발악같은 거다. 무릎이 아프다고? 계속 달리다 보면 또 괜찮아진다. 그냥 계속 하면서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이건 심지어 남들 다 살 빠진다는 군복무를 마쳤을때까지도 비만이었던 나에게 헌사하는 고급 복수다. 맛좀 봐라. 저주의 원인은 모르니 그 대상인 너라도 좀 뜨거운 맛을 봐야 쓰겠다. 나는 그저 고통을 실행하고 싶을 뿐이니까.
그런데 완주하고 집에 돌아와 점심 먹고 또 일하러 가야 되는데 그건 좀 걱정이…
# by bluexmas | 2011/05/27 22:56 | Life | 트랙백 | 덧글(7)


무사 완주 하시길 빌께요.
가끔 드는 생각인데요, 무엇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몰아세우며 즐거워하는 점(?)이 있는 것도 같아요..
초보달림이의 생각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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