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패감과 뜨개와 고양이

이 여름, 더위 만큼이나 열패감에 시달렸다.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여름만의 일은 아니다. 작년 6월까지 아버지 사후 일처리를 한 이후, 일 년 넘게 ‘현타’에 시달리고 있고 그 한가운데에 열패감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는 내 차례인데 앞으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기분에 시달렸다. 할아버지가 79, 아버지가 80에 세상을 떠났으니 대략 내 앞에 30년의 시간이 남은 것 같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 없을 뿐더러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20년까지 괜찮고 나머지 십 년은 그냥 무저갱으로 계속 끌려 들어가는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다. 그런데 사실 그게 뭔지도 몰라서, 작년 이맘때는 돈 안되는 글을 미친듯이 써봤다. 4, 5월부터 연말까지 원고지 삼천 장을 써서 이리저리 들이밀어 보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전혀 없었다. 물론 성과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떠올라서 그대로 밀어 붙였을 뿐이었다.

올해에도 초반엔 역시 돈 안되는 글을 좀 써 들이밀었으나 에너지가 있든 없든 한 해 내내 하고 싶지는 않아서 말았고 이후 더 강하게 현타가 몰려왔다. 아, 내 인생 실패인 걸까? 그런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실패를 안 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잘 하지는 않고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가짐인데 그 모든 게 모든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꾸역꾸역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다 안 하고 싶어서 이번 달에는 뜨개를 미친 듯이 했다. 보통 오전에 밖에서 2시간 정도 하는 걸 집에서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했다. 진도를 빨리 뽑아서 완성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잡음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엔 열 시간씩 뜨개를 했는데 그러면 탈이 나게 되어 있다. 돌이킬 수 없이 틀려서 풀어서 되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벌어지니 그렇게 시간 들여 한 만큼 또 후퇴했다.

그리고 정신을 좀 차렸다. 아, 이렇게 해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다. 틀려서 후퇴하는 게 나쁠 건 없지만 또 좋을 것도 없으니 들인 시간을 버리는 것 만큼은 최대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뜨개에 할애하는 시간을 또 다시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보았다. 그래, 내가 정말 살면서 모든 선택을 다 잘못했을 수도 있다. 싸워야 할 국면에 더 싸우지 않고 회피했을 수도 있고 하여간 그런데 그래도 너를 데려오기로 한 선택 만큼은 절대 틀린 게 아니다. 모든 게 다 틀렸어도 이거 하나는 분명히 맞는 선택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