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무오키(*)-피로한 감칠맛

무오키에 방문한 날도 매우 더웠다. 생활권에서 강남은 최소 1시간, 꽤 힘이 들어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레스토랑에 도착해 스탭들, 특히 소믈리에가 좋은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다. 이런 날씨에 프렌치 커프 셔츠까지 입고 일을 하는데 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웰컴 드링크는 루바브로 균형을 맞춘 얼그레이인데 식사 시작에 입맛을 돋울 정도로 딱 적당한 신맛이 돋보였다. ‘주은’에서 낸 같은 개념의 드링크는 식초의 신맛이 좀 강해서 과일을 썼더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런 음료가 나왔다. 아뮤즈 부시는 염소젖 치즈, 캐러멜을 입힌 헤이즐넛, 버번위스키 소스에 버무린 비트를 얹은 비트 타코(토르티야도 비트로 만들었다)였는데 흙 향 및 풀 향의 고전적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염소젖 치즈와 비트에 한 켜 씩 향을 더 입혀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켰다.

그런 가운데 양 끝에 올린, 캐러멜을 입힌 헤이즐넛은 단맛과 고소한 맛 자체로는 분명 어울리는 요소였으나 질감도 존재감도 조금 거슬렸다. 염소젖 치즈의 무스와 익힌 비트의 부드러움에 비하면 바삭함을 넘어서 조금 단단해 이질감이 들었다. 조형적인 차원에서 통 헤이즐넛을 그대로 썼다고 이해했는데 나머지 요소에 비해 크고 양도 많고 하여간 뭔가 좀 균형이 맞지 않았다. 헤이즐넛을 통으로 쓰기보다 바삭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리를 해 쓰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

한편, 이 아뮤즈 부시야말로 요즘 다닌 어느 레스토랑보다 앞으로 나올 음식에 대한 예고편 역할을 잘하는 것이었음을 곧 알아차리게 되는데…

첫 번째 요리는 세 가지 무(자색 무, 래시디, 청무)와 허브, 패션프루트 거품을 더하고 라임 가쯔오 다시로 한데 아우른 도미 크루도였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니다 보면 의외로 제철 개념이 잘 반영 안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그것은 파인 다이닝의 기본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메뉴를 계속 바꾸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재료는 반영하나 온도 같은 계절감은 반영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아무래도 서양 요리 특히 파인 다이닝의 온도 개념이라는 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다 보니 한국 냉면 같은 음식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이날의 첫 번째 요리는 매우 훌륭했다. 주요소인 숙성 도미와 라임 가쯔오 다시의 조합만으로도 적당히 시원해 체온을 충분히 낮춰 주는 한편, 감칠맛으로 인한 만족감도 상당했다. 특히 라임 가쯔오 다시는 레몬그라스 아니냐고 물어보았을 정도로 향과 신맛과 감칠맛의 균형이 훌륭했다. 무와 거품도 질감과 향을 거드는 차원에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그런 가운데 이미 이 첫 번째 요리에서 존재감 강한 감칠맛의 패턴을 슬슬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뮤즈 부시의 염소젖 치즈 무스와 첫 번째 요리의 가쯔오 다시에서 나는 감칠맛이 요리의 양 등에 비해 상당했다. 그런 가운데 세 번째 요리 간 무스 토스트가 등장해 식사 초중반에 패턴을 확실하게 완성했다.

이것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균형감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바삭한 브리오슈 위에 닭 간 파르페와 무화과 콩포트, 젤에 가까운 베르가모트 소스는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잡아주는,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요소 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뮤즈 부시부터 상당한 강도의 감칠맛이 세 요리 연속으로 나오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슬슬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감칠맛의 매개체 또한 첫 번째 요리만 국물로 다르고 나머지 둘은 무스다 보니 많은 요소들이 동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조롭다는 인상을 바로 받았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점심 코스는 짧은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만족감을 주는 게 주목적이고, 그렇다면 이런 전략이 효율도 좋고 설득력도 있다. 말하자면 여백 없이 맛의 공간을 꽉꽉 채운 요리를 내야 먹는 사람들이 쉽게 만족할 수 있다. 다만 그러려면 뭐라도 음료를 시켜야 균형도 맛도 셰프가 추구하는 맛의 완성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단백질 코스로 들어가서 구운 농어가 등장했는데, 역시 진한 감칠맛을 품은, 무스 같은 소스가 등장했다. 캐러멜화한 콜리플라워 퓌레였는데 소스 그 자체로도 아주 진하고 저온 조리를 거쳐 껍질을 바삭하게 지진 농어를 압도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머지 요소들이 이 무거움을 좀 덜어주면 좋은데 셰리 식초에 절인 느타리버섯과 동치미에 재운 펜넬 및 딜은 단맛 등으로 퓌레의 무거움을 되레 증폭시켜 주고 있었다.

다음 요리는 파스타(라비올리)였는데 이제 이쯤 되면 사진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요소들을 미리 가열해 두었다가 조합만 할 수 있는 요리들에 비해 눈으로 보는 완성도가 조금씩 떨어진다. 좀 덜 깔끔하고 다소 허술하달까? 그런 가운데 생강과 참나물로 만든 나비 모양의 칩-미리 만들어 두었을-만 너무 정교해서 되레 나머지 요소의 기가 죽어 보였다. 품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 차라리 크래커를 크게 만들어 과감히 쪼개 얹었더라면 시각과 미각 양쪽 면에서 균형이 더 잘 맞았을 것 같다.

바로 뒤에 채끝 스테이크가 나온다는 것을 고려하면 쇠고기 소를 채운 라비올리는 재료가 겹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테이크를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를 바로 이 라비올리에 썼을 거라 생각했으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맛의 진행 면에서는 돼지고기나 리코타 치즈 같은 재료들이 더 잘 맞았겠지만(돼지고기 주 jus를 쓰기는 했다) 그러자고 또 다른 재료에 비용을 쓰는 것보다 이게 더 합리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역시 진하고 감칠맛 넘치는 소스에 확실히 물리기 시작했다. 먹는 순간엔 사람을 압도해 좋다고 느끼도록 만들지만 이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그때 그게 무슨 맛이었지?라고 떠올리면 이렇다 할 인상이 남지 않는 맛이다. 잔상이 남기는 하지만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라비올리의 피도 이보다 더 얇고 섬세할 수 있다고 보았다.

홍차 바탕에 라임과 각종 스파이스를 쓰고 라임 거품을 얹은 입가심 음료가 나왔다. 지금까지의 맛들을 어느 정도 덜어주긴 하는데 식사 종반이라면 더 시고 온도가 낮아도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 주요리는 채끝 스테이크. 일단 안심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했지만 그래도 쇠고기고 또한 농어 다음으로 등장해서 아, 역시 그렇구나… 라며 조금은 체념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싫어할 테니까 어쩔 수 없다. 요리는 셰프의 시그내쳐라는 카페오레 소스가 콰콰쾅 몰아치는 가운데 나머지 요소들은 예쁘고 다정하지만 기가 팍 죽어서 그냥 네, 저희는 저희랍니다 반갑습니다 정도의 존재감으로 안온무해다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재배한다는 트러플을 2만 원에 추가할 수 있는데 귀엽고 좋았다.

이렇게 요리를 다 먹고 디저트가 등장했는데 왠지 모두가 우와우와 좋아할 것 같은 설정이었지만 나는 좀 좌절했다. 과연 ‘트롱프뢰유(눈속임)’가 이런 레스토랑, 그것도 점심 식사에서 꼭 필요한 행보일까?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열린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이 자두 모양의 무스에 껍데기 입히는 걸 보았는데… 노동력 또한 한정된 자원인데 기본 16만 원 점심 코스에서 이런 카드까지 써서 손님을 매혹시켜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한편, 맛의 차원에서도 이 정도의 조작-더 적합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은 대체로 의도에 비해 효용의 체감도가 떨어진다. 특히 한국의 자두가 생김새와 향에 비해 엄청나게 맛있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이걸 (유)지방으로 감싸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내는 게 효율적인 행보라 보긴 어렵다. 물론 파인 다이닝이 효율을 따져가며 돌아가는 시스템은 아니겠지만 자두 모양의 자두 아닌 것과 자두 아이스크림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맛을 잘 살린, 또한 시원한 자두 소르베가 여러모로 더 좋은 디저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프티 푸르에서도 이런 경향은 일관적이었다. 바다를 모사하려는 의도는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못 먹는 요소가 너무 많다. 스탭도 ‘이것저것은 먹지 말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뮤즈 부시의 타코를 받치고 있는 카카오닙스(?)도 그렇고 먹을 수 없는 요소는 식품 안전 차원에서 미덥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안내를 무시하고 먹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도 없다.

또한 저 자두 모양 무스가 그렇듯 이런 설정을 보면 좋게 말하면 너무 애쓰는 것, 나쁘게 말하면 헛심 쓰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일정 수준의 극장성(theatricality)은 파인 다이닝에서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뜻한 음식과 찬 음식의 완성도 또한 간극이 너무 또렷하다.

무오키는 지향점에 따라 평가가 갈릴 것 같다. 음식보다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매우 훌륭하다 느낄 수 있다. 넓지 않으나 개인 공간을 충분히 할애해 편안하고 접객도 훌륭하다. 기본 비용이 16만 원이니 음료 같은 걸 하나도 시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음식을 꼭 먹고 싶다면, 맛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면 엄청나게 만족스럽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쭉 살펴보았듯 진한 감칠맛을 견제하지 않고 소스를 통해 매 코스마다 내보내다 보니 길지 않은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피로가 쌓인다. 식사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과연 이것이 셰프가 하고 싶은 음식, 이루고 싶은 비전인 걸까? 아니면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에 맞춰 구축한 결과물일까? 그런 레스토랑들을 알고 있기에 후자가 무조건 나쁘다 생각하지 않지만 먹다 보면 미묘하게 재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본 비용 16만 원에 트러플 추가 2만 원, 와인 짝짓기 석 잔 12만 원,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은 탄산수(산 펠레그리노)까지 합쳐서 30만 원 좀 더 썼다. 채 20석도 안 되는, 사람을 많이 받지 않아 넉넉한 공간인지라 특히 월차 내고 좋은 분위기에서 점심 식사 하려는 직장인 같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되리라 믿는다. 그것이 전부냐 물으신다면 그것조차 못 하는 곳들도 수두룩한데 뭘 더 바라시느냐 되묻겠다.

* 사족: 와인은 그럭저럭 즐겼지만 지금 딱히 기억나지 않는 걸로 미뤄 보건대 엄청나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레드는 좀 많이 풀려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