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에어룸 토마토
이 일을 이제 이십 년 가까이 하고 있는 가운데 막말에 가깝게 거침없이 의사를 표현한다고 오해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예상을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눈치를 상당히 본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즉 먹고 평가를 하면 할수록 내 의견이 소수라는 걸 더 극명하게 깨닫게 되는지라 그럴 수밖에 없다.
사설이 길었는데 지난 여름 드디어 에어룸 토마토를 먹고 나 혼자 한참 눈치를 보았다. 아, 이거 맛없다고 그러면 또 누군가는 발끈하겠지… 그러나 생각해 보자. 적어도 보름 전에 그것도 재빨리 예약 구매를 한다. 3킬로그램에 5만 원 수준이니 절대 싸지 않다. 혼자 먹기는 많은데 그렇다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아닌 것을 눈을 질끈 감고 샀는데 안타깝게도 맛이 없었다.
에어룸 토마토는 내 일생 음식 기억들 가운데서도 매우 상위권에 놓여 있다. 이런 토마토가 있다는 걸 안 그 자체로 상당한 충격이었는데 드디어 맛을 보니 정말 엄청났다. 아, 토마토가 이럴 수도 있구나. 에어룸 토마토는 상업화된 품종(F1)이 아닌, 오십 년도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형질을 유지한 토마토를 의미한다. 자가수분을 하는 작물의 특성상 품종의 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며 농부는 올해의 씨를 모아 내년에 심어 대를 물린다.
그 결과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모두를 매우 풍성하게 갖추었으나 장기 보존이 불가능한 탓에 한참 자취를 감추었다가 내가 미국에 발을 들인 2000년대 초반경에 에어룸 토마토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유명한 품종들이 도입 및 재배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먹고는 싶었으나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예약 구매가 걸림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펀드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바로 주문을 넣고 한참 기다려 받은 토마토는 전반적으로 묽었다. 신맛도 단맛도 짠맛도 감칠맛도 묽었으며 과육도 햇살을 담뿍 머금은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어렵게 산 보람도 없이 다 못 먹고 버렸다.
토마토와 딸기, 그리고 복숭아. 인기가 무척 많고 다들 맛있다고 여기지만 나는 동의를 못하는 작물들이다. 나는 땅이 문제가 아닌가 의심해왔는데 좀 찾아보니 그보다 기후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물론 딸기는 아예 땅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온갖 희귀한 과채류가 ‘우리만 가꿔서 단 며칠만 판다!’고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비싸게 파는데 여태껏 만족한 경우는 없다. 진짜 흥미로운 건, 바로 근처에 있는 나라들의 과채류가 훨씬 더 맛있음에도 잘 인지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체 왜 그런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