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메구로] 카츠이치-돈까스의 멘탈리티(2)

최근에 먹은 돈까스에 대한 글을 쓰고 나니 예전에 먹은 것에 대해서도 드디어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난 2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보러 도쿄에 갔을 때 메구로의 ‘카츠이치’에서 먹은 상 로스카스 정식(2,050엔)이다. 대체 왜 먹고 7개월이 넘도록 글을 쓰지 않았느냐고? 분명히 잘 만들고 싶어하는 건 알겠으나 지향점에 동의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겉이 다소 눅눅하고 수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튀김의 표준 기름 온도인 섭씨 170~180도보다 낮은, 굳이 추측하자면 160도 수준에서 튀겨낸 느낌이었다.

튀김을 찜이나 데침처럼 접근하기 때문인데 두툼한 고기를 익혀내려면 기름에 머무는 시간이 아무래도 길어지고, 입자가 제법 살아 있는 빵가루(팡코)까지 감안하면 껍질에 수분과 기름기가 섞여 남아 느끼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게 일본의 식문화가 추구하는 질감이라고 보고 그에 맞춰서 본다면 훌륭하지만 내가 여기는 튀김의 최선이라고는 보지 않기에 여태껏 글을 못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안 좋다는 이야기 하기 싫었으니까.

돈까스 하나 가지고 뭐 그렇게 오래 고민을 하느냐 그럴 수 있다. 나도 뭐 이렇게까지 이러느냐 스스로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또 막상 가서 먹고 오면 어쩔 수가 없다. 이곳은 정말 음식점이 없을 것 같은 건물의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원래 넓지 않지만 조리 공간이 정말 좁아 보였다. 전공자로서 굳이 추측하자면 60센티미터는 넘지만 80센티미터는 안 된달까? 그런 곳에서 오륙십 대 남자 둘로 이루어진 조리 인력이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지하 1층이라 빛도 잘 안 들어오는 공간에서 온종일 돈까스를 튀기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걸 계속 생각하다 보니 ‘지향점은 알겠지만 동의는 잘 못한다’ 같은 이야기는 왠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간, 한국에서도 요즘 이런 돈까스를 추구하는 곳들이 늘고 있는데 그런 면을 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일본 특히 도쿄의 사정이 그렇겠지만 어찌하여 돈까스는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복잡하지 않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뭔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소스에 뭔가 알 수 없는 재료를 더한다거나 00시간 숙성시킨 고기 등을 자꾸 내세우는데 돈까스는 그런 음식이 아니다. 신선한 돼지고기에 소금과 후추, 밀가루와 계란과 빵가루 정도만으로 짧은 시간 내에 조리해서 내놓을 수 있는 음식, 말하자면 공간으로 치환되는 시간을 미리 많이 들이지 않는 음식이 바로 돈까스라고 본다. 이걸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완벽하게 다듬어 내는 게 돈까스의 본질이자 멘탈리티지, 무슨 소스나 시간을 들인 숙성 같은 건 사실 만드는 사람의 정신적 만족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재작년인가 잘 나간다는 합정역 인근의 돈까스집에 갔다가 좌절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왜 돈까스는 이런 음식인가? 일본인들은 이 음식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같은 고민이 일절 없는, 형식만 가져와서 얕은 꾀를 부려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발버둥치는 저급한 음식이었다. ‘반복은 변화의 형식(Repetition is a form of change)’이라는 만트라를 이해 못 하면 음식, 특히 돈까스 같은 건 잘 만들기 어렵다.

*사족: 조리의 난이도는 안심(히레)이 더 높지만 운동을 안 해 맛이랄 게 없고 비계가 결부되지 않으므로 난 등심(로스)이 더 나은 돈까스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