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영화들(2)

연말의 게으름에 업데이트를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영화 결산 글 그 두 번째 입니다. 크리스마스에 할 일도 없는데 다 올올릴만큼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5. Hostage (03/11/05)

특수 임무를 맡은 경찰이 그 임무 수행에 실패해서 트라우마를 안고 한직으로 밀려나 시간이나 죽인다는 설정은 앞의 글에서 언급했던 ‘Assault on Pressinct 13’ 과 비슷합니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대체 언제 보았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는 브루스 윌리스는 같은 대머리지만 조금 더 섹시하다고 인정받는 케빈 스페이시처럼 협상가 negotiator였지만, 잘 나가다가 갑자기 홱 돌아버린 인질범이 다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어버리는 바람에 임무 완수에 실패하게 됩니다. 냉철한 자아 비판의 시간을 가져보니 아무래도 케빈 스페이시보다 섹시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판단, 한직으로 밀려나 남은 시간을 피부 미용과 웨이트 트레이닝 등에 할애하며 재도약을 꿈꿉니다. 하지만 하필 그의 관할 구역에 귀여운 비행청소년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악한 십대들이 사고를 치고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데, 그는 결국 거기에 휘말리게 됩니다.

아는 바는 전혀 없지만, 인질극을 소재로 한 영화는 결국 공간적인 배경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극 전체의 긴장감이 달라지는 것일텐데, 이 영화에서는 인적이 드물고 지리적으로 거의 고립되다시피한 어느 산간 마을의 호화주택을 배경으로 설정해 제가 보았던 인질극 소재의 영화-Negotiator처럼 주로 도심의 밀집 지역에서 인질극이 벌어지는-와는 다른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여기에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직업을 가진 인질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극은 기본적인 긴장감을 그럭저럭 끝까지 유지해나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브루스 윌리스 가족이 인질이 된다는 상황까지 덧붙이면서 나름 주인공의 심리적인 갈등까지 영화에 담아 내려고 욕심도 부려봅니다. 그리하여 데미 무어를 새파란 애송이한테 빼앗긴 왕년의 액션 영웅은 피말리는 내적 갈등을 안고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구(딴 얘기지만 신구가 아버지였는데, 물론 오래된 얘기지만 게맛도 아는데 왜 노주현의 성을 따랐던 것일까요? 참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인데 서열이 거꾸로 작용하는 기현상이…)를 혹사시킵니다. 그리하여 그의 희생,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노구의 희생으로 영화는 최소한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을 정도의 긴장감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덧붙이자면 브루스 윌리스 말고도 완전히 미쳐버린 10대 악마로 나오는 아이들의 연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6. Sin City (04/01/05)

지난 10년간 연휴 재방송으로 나오는 Die Hard 세 편들 외에는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를 본 기억이 없는데, 올해에는 무슨 복이 터졌는지 두 편 연속으로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감독 Robert Rodriguez가 원작자 Frank Miller를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에 관여시키고자 감독 조합까지 탈퇴하고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수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시각적인 재미를 선사합니다. 색감이 철저하게 거세된 거친 흑백 화면은 영화가 지닌 폭력성을 적당히 포장해 청중으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느낌을 가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화면에서 열심히 손발이 잘려 나가도 전해지는 느낌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피마저 하얗게 흐르기 때문에, 대체 흑백 텔레비젼 시절에는 젖과 꿀이 흐르던 피가 흐르던 결국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경스런 상상마저 하게 만듭니다. 또한 뭐 저같은 무식쟁이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입김이 살짝 배인 짤막한 스토리들의 연속들은 하나하나 잘 짜여진 구성으로 단지 시각적인 즐거움만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 같습니다.

다 언급하지 않아도 은근히 호화 캐스팅인 이 영화는 엄청난 비중을 기대했지만 결국 스트리퍼 치고는 어설픈 노출의 옷차림에 밧줄만 돌리는 제시카 알바를 나름 주목받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로 그녀에게 반해버린 저 같은 무식쟁이는 그녀가 나오는 영화-전혀 fantastic하지 않았던 Fantastic 4를 필두로-를 대부분 보았음에도 실망밖에는 할 수 없었다던 슬픈 후일담이 엔딩크레딧과 함께 전해내려온다고 합니다(친구의 추천으로 DVD까지 빌려 보았던 ‘Honey’는 청소년 공익광고 협의회에서 몰래 협찬한 것 같은 어용냄새가 물씬물씬 나더군요).

7. Sahara (04/08/05)

네, 무식쟁이는 이런 영화만 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 SF 내지는 액션물…99% 혼자 보기 때문에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는 대체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올해 어딘가의 투표에서 미국에서 제일 섹시한 남자로 뽑힌 매튜 매커니히와 영어 발음이 가끔 듣기 거북한 페넬로페 크루즈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되었던 ‘National Treasure (2004)’ 와 비슷하게 미국의 역사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보물을 찾기 위한 모험담을 줄거리의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천한 역사가 대체 무슨 보물을 계승시킬 능력은 있는건지 회의를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영화의 개연성 자체에 그다지 점수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점수를 깎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금화를 가득 실은 배가 어쩌다보니 사하라 사막까지 흘러갔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어디 대체 얼마나 재미있게 만들었는지 두고 볼테다’ 라는 무식쟁이답지 않은 비판적인 시각마저 지닌채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어집니다. 하여간 무식쟁이에게 이런 건방진 태도마저 지니게 만들었던 이 영화는 뻔한 블럭버스터의 문법에 충실하면서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액션영화는 그저 재미있으면 그만입니다. 금화를 실은 배가 사하라로 갔던 화성까지 갔던…

 by bluexmas | 2005/12/23 15:01 | Movi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mag at 2005/12/24 10:01  

예전에 씨네 21을 끼고 살 때 조금 이상한 버릇이 있었는데,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볼 계획이 없는 영화, 그리니까 매우 악평을 받는-주로 액션물-영화에 대한 리뷰를 꼼꼼히 읽던 적이 있었어요.

리뷰어가 막 화가나서 욕을 하거나 아니면 시종일관 시니컬한 자세로 씹는 게 전 재밌더라구요. bluemxas님의 리뷰 중에도 은근히 그런 재미를 발견.

무식쟁이라고 누누히 강조하시지만요,

(bluexmas님이 무식쟁이면 개봉영화 안보는 저는 북경원인 쯤 될려냐..)

‘밧줄만 돌리는 제시카 알바’ 하하.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blue christmas가 인사해야 할까요?

그러면 안되겠죠?

크리스마스는 빼고, 편안하고 따뜻한 주말 되세요.

happy holiday.

 Commented by bluexmas at 2005/12/24 14:15 

제가 무식쟁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대체 기술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에는 관심이 많아서 조금이나마 악기도 다루고 책도 보고 그랬지만, 영화까지는 그럴 여력도 관심도 없어서 늘 이런 식으로 대해다보니 그저 재미있다/없다의 구분 밖에는 하지 못하게 되더군요.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별 기분이 들지도 않는 요즘이라, 무덤덤합니다. 주말이니까 밀린 집안일과 휴식과 미식축구 정도가 전부겠죠. 내일 영화를 보려는데 뭘 볼까 생각중입니다. mag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