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back Mountain(2005)-산에서 피어난 아픈 사랑의 꽃
텍사스 출신의 카우보이 Jack Twist(#### 분)와 와이오밍 출신의 또 다른 카우보이 Ennis Del Mar는 1963년의 여름, 몬타나주의 Brokeback 산에 머물면서 양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사랑(네, ‘사랑’입니다. 우정이 아니고…)’에 빠지게 되고, 여름이 지나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지만 그 사랑은 평생동안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족쇄가 됩니다.
사실, 어제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때 보려고 생각한 영화는 Chronicles of Narnia 였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맞춰서 극장에 갔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좀 트이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평가들이 올해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뽑았다는 얘기에도 좀 끌렸던 것 같구요. 결국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영화는 몬태나 주의 풍광을 잘 담아내었지만, 영화 자체는 속이 트이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파질 수 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를 엄청나게 절제된 대사와 연기로 끌고 가고, 그 수려한 풍광은 자연 특유의 무표정함으로 그렇게 아픈 이야기에 비장함을 더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매표구 앞에서도 과연 이 영화를 봐야만 되는 것일까 머뭇거렸습니다. 일단 남자들간의 사랑이라는 소재에 공감할 수 있을까 확신-물론 동성애 대한 편견이 없다고 백번 생각해도-이 없었고, 리 안 감독이 이렇게 미국적인 배경과 소재를 과연 어떻게 소화해냈을지 믿음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도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지만, 솔직히 영화 ‘Hulk’의 그 컴퓨터 그래픽으로 빚어낸 헐크의 흉칙함과 우스꽝스러움에 분명 결정권자였을 그에게 점수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라도 이 영화가 어떨지 예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미 예고편을 볼 때 놀랐습니다. 몬타나에 카우보이, ‘당연히 미국스런 영화겠지’ 생각했는데, 마지막 자막이 ‘Director: Ang Lee’ 였으니까요.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정말…).
그러나 당연하게도 무식쟁이는 예측할 능력이 없을터이니, 저의 모든 걱정은 결국 기우였던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류의 영화를 워낙 잘 안 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근래 보았던 이런 류의 영화 가운데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감동을 제공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입니다. 영화 시작 후 30여분 쯤, 두 주인공이 성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를 간단한 동성애 영화도 아니고, 또 감독도 동성애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물론 원작이 있는 영화이니 그 원작을 따랐을 것이라고 추측만 합니다만…). 어느 매체의 리뷰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서로 동성이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 이들의 삶은 거의 아무도 모르게 피폐해져 갑니다. 금지된 사랑의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 것처럼… 그리고 감독은 여러해동안 자신들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관계를 그렇게 피폐해져 가는 삶과 병치해서 보여줍니다. 그들은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방황하지만, 그 이유를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움의 무게는 세월이 흐를 수록 벅차질 뿐입니다. 영화 내내 이들이 갈등하는 것 처럼, 이들도 자신들을 사로잡는 이 힘이 어떻게 해서 오는 것인지 알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누게 되는 대사 “God,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 Well, why don’t you? ” 는 이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이래 지고 살았던 고뇌의 무게를 간략하고도 명확하게 묘사해줍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저를 사로잡았던 것은, 두 주연 배우의 연기입니다. 바로 지난달에 개봉한,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군인들을 소재로 한 ‘Jarhead’ 에서 주연을 맡은 Jake Gyllenhaal(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주인공 기상학자의 아들로 출연합니다)과 곧 개봉할 Casanova에서도 주연을 맡은 Heath Ledger는 현재 자신들의 나이인 20대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하는데, 기본적인 캐릭터가 그다지 말이 많지 않고, 또 영화 자체가 대사로서 이끌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할때 굉장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사실, 연기 자체를 볼 줄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처음으로 연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영화의 축은 Ennis 역의 Heath Ledger에게 조금 더 기울어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알아듣기 힘든 억양으로 몇 마디 웅얼거리는, 말 없고 무뚝뚝한 카우보이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기 때문에 짊어지게 된 내면의 고통을 평생 가지고 가는 그의 연기는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하나의 기둥으로써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각본도 그에 맞춰 그의 삶을 보여주는데 조금 더 치중하는 듯 보입니다. 그는 애초에 그의 비밀을 아내에게 듣켜 결국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고, 끝내는 사랑도 아무런 예고 없이 잃은 채, 죽으면 재를 자신들이 만났던 산에 뿌려달라는 잭의 약속조차 그 부모의 반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무력함과 슬픔에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도 없는 추레한 트레일러에서조차 그는 소리죽여 흐느끼는 정도로 밖에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잃은 그의 삶은 내일이 와도 그렇게 무표정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산처럼…
워낙 말이 없는 영화다보니, 보고 난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데다가, 워낙 알아듣기 힘든 억양이 영화 전체(어쩔 수 없이 저는 자막이 없는 영화를 보니까요)를 지배하는 바람에 아주 세세한 감정의 흐름까지는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감정의 흐름은 정말이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산,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 배우들의 눈빛… 이런 것들만으로 영화는 무리없이 흘러가며 대사는 단지 거기에 조금의 디테일을 더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는 일단 시각적인 요소만으로 청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본 좋은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영화로 꼽고 싶습니다.
# by bluexmas | 2005/12/27 15:07 | Movi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