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Zinfandel을 찾아 떠난 모험
회사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달린 작은 모니터(뉴스 등이 나오는… 엘리베이터 같이 탄 사람과 뻘쭘하게 눈 마주치지 말라는 속 깊은 배려의 산물^^)를 어느날 들여다보고 있는데, 자막이 뜨더군요. “Good & inexpensive Zinfandel ‘Smoking Loon($9)’-Berry, something, something flavor match well with BBQ…”
레이블의 이름이 낯익어서 사무실로 올라가자 마자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퍼마켓의 와인 복도를 기웃거릴 때마다 비교적 현란한 디자인 덕에 눈에 띄던 레이블이더군요. 뭐 와인이라면 쥐뿔도 아는게 없고 그저 레이블이 마음에 들고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 사다가 가끔 마시는터라(그나마 요즘은 한 병 다 먹기에는 배가 불러서 잘 안 먹지만), 간만에 한 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수퍼마켓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같은 레이블의 다른 품종은 널리고 널렸지만 Zinfandel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오기가 발동, 토요일에 근처 수퍼마켓과 술가게를 모두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들른 한국사람 소유의 술가게에 물어보니, 아마 안 팔려서 수거 된 다음에 다른 레이블을 붙여서 내놓을 확률이 많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가게 주인 아저씨께서 덧붙이시기를, 대부분의 저가($15이하?) 와인은 양조장 레이블만 붙였을 뿐, 다른 양조장의 포도를 사다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고… 그래서 심지어 어떤 양조장은 밭조차 없는 유령 양조장이기도 하다는군요. 저는 뭐 그냥 널리 알려진 Robert Mondavi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대규모 레이블조차도 저가 와인은 그냥 사다가 만든 포도로 빚었을거라고…
그리하여 충격적인(?) 와인 산업의 비밀을 앍게된 저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은채 꿩 대신 닭이라고 Clos Du Bois의 진판델을 사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이게 더 비쌌습니다. 원래 15불인데 세일해서 10불이었으니까… 저녁으로는 불고기를 구워서 와인과 함께 먹었는데 뭐 늘 미친척하고 Cabernet만 먹다가 질려버린 입맛을 생각할 때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병을 다 먹고 나서는 배가 불러서(취한게 아니라…와인 한 병은 소주 한 병과 맞먹습니다. 알콜 농도 반에, 양은 두 배니까요), 역시 술은 보드카가 최고다! 라는 명제를 본의 아니게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취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늦은 생일 케잌을 만들어 먹는답시고 Genoise를 시도해봤습니다. 굴러다니는 레시피는 기름이나 버터 대신에 계란 노른자를 넣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별로 촉촉하지는 않더군요. 남는 계란 흰자로 머랭을 만들어 섞었지만 별 도움도 안 되었구요. 다 구워진 다음에는 어차피 입으로 들어가면 똑같고 크게 만들 생각도 없어서 대강 잘라서 Whipping Cream이랑 딸기를 얹은 다음에 먹었습니다. 솔직히 별로 맛이 없더군요(보기에도 맛 없어 보이네요-_-;;). 코코아 파우더를 섞었음에도 별로 초콜렛 맛도 안 났고… 먹고 나니 배만 불러서 한 없이 슬프기만 했습니다.
# by bluexmas | 2007/04/12 11:51 | Life | 트랙백 | 덧글(5)
비공개 덧글입니다.
가하님, 저도 고구마 케잌 좋아는 하는데, 알고 보면 좀 허무하죠. 고구마를 구워서 식힌 다음에 생크림과 설탕을 섞어서 으깨면 고구마 무스가 되고, 케잌을 한 겹 깔면…. 고구마랑 당연히 별 차이 없겠죠?-_-;; 그래도 우리나라 케잌은 맛있잖아요. 여기 한국 제과점 케잌들 다 너무 맛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