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라는 이름의 돈 먹는 벌레

아마 남자들 가운데 저만큼 차 같은데 관심이 없는 남자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어릴때는 다른 애들처럼 기계 같은데 관심이 많아서 아버지 계산기 같은 것들도 뜯어봤다가 원상복귀 못 시켜서 혼난적도 많았고, 라디오 조립 같은 것들로 경시대회 같은 데에도 나가보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갈 수록 기계로부터의 관심은 갈수록 멀어지는터라… 한때 기타를 치면서 장비 같은데 관심도 무척 많았지만 가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장비들을 제대로 다루려면 공부보다 더한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걸 멈췄거든요. 뭐 그거랑 비슷한 맥락인지는 몰라도 뭔가 복잡한 사양을 가진 자동차 따위에는 사실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시피 하죠. 사실 이건 따지고 보면 돈이랑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게 더 솔직한 생각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차에 별 관심이 없다 보니 꼭 필요한 때에 엔진오일 갈아주고 타이어 돌려주는 것도 정말 허덕거리며 해왔던지라, 5년 여를 몰고 다니는 중고차가 창문이 안 열리고 사이드 브레이크 등이 브레이크를 내려줬음에도 계속해서 들어와 있는 등등의 이상징후를 보이자 나름 불안해지더군요. 이러다가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서버리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렇게 불안해 하는 와중에도 한 두달을 더 시치미 뚝 떼고 타고 다니다가(마치 늘 타고 다니는 말이 병들어서 비실거리는 티가 역력한데도 모른척 더 미친듯 채찍질해서 타고 다니는 양…), 3일 연휴를 이용해서 9만 마일 정기 점검을 받았는데, 그렇게 무관심하게 끌고 다닌 것에 비해 아주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삽시간에 한 달 생활비를 날려버릴 정도의 돈이 들어가더군요. 일단 기본적으로 해줘야 되는 9만 마일 정기점검에 근 1년 동안 참고 다녔던 운전석 쪽 창문의 고장(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주차카드를 긁을 때마다 차 문을 잽싸게 열고 긁어주고 다시 닫는… 이것도 숙달되니까 창문 열고 닫는 것보다 빨라지더군요-_-;;;)수리, 알고 봤더니 정말 손톱만큼 남은 앞뒷바퀴 모두의 브레이크, 새고 있다는 엔진 캐스킷…이건 뭐 차 주인으로서 차에게 미안해질 정도의 상황인지라 그동안 모른척 끌고 다녔던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다행스럽게도 제 차가 나온 해부터는 타이밍 벨트를 체인으로 바꿔서 그걸 갈아줄 필요가 없었길래 망정이지, 만약 그것마저 갈아줬다면 이번 달 내내 밥하고 소금만 먹었어야 될 상황에 맞닥뜨렸을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제 차는 그 정도 돈을 들여서 정비를 해줘야 될 상황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미 자질구레한 사고(가운데 가장 어이 없었던 것은 아침에 잠이 덜 깬채로 차고에서 차를 빼기 위해 후진하다가 멀쩡한 우체통을 받은 것… 차도 차지만 우체통이 쓰러져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고…)들로 칠이 좀 벗겨진데도 있고, 여섯살 박이라서 그런지 뭐 광택도 죽은지 오래거든요. 뭐 그래도 당장 새차를 살 수 있는 형편도, 또 사기 위한 온갖 시장조사 및 딜러 방문 등등의 절차, 그리고 새차를 아껴줘야 되는 상황 같은 것들마저 귀찮기 때문에 별 선택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여섯시간에 걸친 대정비를 마치니까 차의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게다가 토요일엔 날씨도 그렇게 덥지 않아서, 정말 오랜만에 창문을 내리고 운전을 하니까 기분도 좋았구요.

그러나 이게 차에게 주인으로서 베풀어줘야만 하는 보살핌의 끝은 아니에요. 타이어가 거의 다 닳았는데 코스트코에서 이번달 쯤에 나온다는 쿠폰을 기다리고 있어서 사실 요즘 마음이 조마조마하죠. 그때까지는 버텨줘야 되는데…하여간 자동차의 잘못은 아니어도 덕분에 돈을 꽤 날려서, 차를 고치고 난 다음에 장을 보러 가서는 굴비를 두어마리 사왔다죠. 천장 선풍기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먹을때마다 쳐다보려구요. 딱 한 숟갈에 한 번씩만… 두 번씩 쳐다보고 그러면 짠물이 너무 빨리 빠질 것 같아서…

 by bluexmas | 2007/09/05 12:37 | Life | 트랙백 | 덧글(13)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9/05 13:06 

흐, 저는 그게 귀찮아서, 타이어가 닳기 전에, 타이밍 벨트가 끊어지기전에, 뭔가 잔 고장이 괴롭히기 전에 차를 바꾸려고 노력한답니다…^^ 새 차 사서 한 5-6년 정도가 고비인거 같아요…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9/05 13:38 

전 지하철과 도보를….^^;;;;

 Commented by laboriel at 2007/09/05 15:20 

마지막문장이 안습입니다ㅎㅎ

차가 돈먹는 벌레 절대 동감합니다.!!

저도 예전에 차고치는거때문에 너무고생해서 차판다음

3년짜리 리스하는걸로 바꿨습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제 경험은 많이 안다니시면 리스도 괜찮은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erasehead at 2007/09/05 16:08 

3월달에 큰사고가 나서 3년 탄 suv를 폐차시키고… 조그마한 해치백을 하나 샀는데… 오늘 처음으로 세차를 했습니다. ㅡㅡ;;;

정말 차 관리하는 일은… 너무 귀찮아요!

 Commented by 초이 at 2007/09/06 03:43 

전 그래도 제 차가 너무 그리워요. ㅠ.ㅠ 이제는 뚜벅이로 살고 있습니다. 다시 ㅠ.ㅠ …

 Commented by 보리 at 2007/09/06 06:05 

제 붕붕이도 잘 위해줘야 하는데 너무 소홀히 하고 있어요. 벨트가 느슨해져서 소리가 시끄러운데 그냥 창문 닫아버리고 있지요. 조만간 정기점검 받아야 하는데 그 정검받는 것 만도 몇백불이 훨씬 넘으니 언제 받게될런지… -_-

 Commented by 소냐 at 2007/09/06 08:16 

그래도 차가 있음 얼마나 좋을까 요즘 생각한답니다. 전 zipcar 같은 렌트카만 쓰다보니 정말 공중으로 날리는 (혹은 길에 까는) 돈이 얼만지 모르겠어요. 단지 차를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가는 돈들…

보스턴에선 주차 땜에 차사기도 힘들긴 하지만… 여튼, 차 모는 느낌이 시원하시겠어요. 드라이브라도 가세요~

 Commented by j at 2007/09/06 10:50  

굴비 ㅋㅋㅋ

9만이면 정말 많이 탄 차인데 그것 치곤 양호한 걸로 위안 삼으시길^^

차사고 4년동안 와이퍼 한 번도 안갈은(많이 타진 않았지만) 저만큼 무심하셨군요ㅋ

 Commented by Eiren at 2007/09/06 11:41 

그래도 오랜만에 싹 정비하셔서 기분은 뿌듯하시겠어요^^ 위에 리플 다신 분들의 차 얘기 읽는 것도 재밌네요;; 저도 슬슬 만오천 마일 정비 받으러 가야하는데 몇 년분 쿠폰을 다시 뒤져야하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9/06 14:23 

blackout님: 저는 돈도 없고 차를 자주 바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별 지장 없으면 돈 좀 썼으니 한 5년은 더 탈까 해요.

비공개님: 저도 차 없는게 좋은데 여기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정말 없죠.

intermezzo님: 뉴욕에서야 가능하죠… 저도 그게 좋아요. 다니면서 음악 듣고 책도 읽구요.

laboriel님: 안습이 무슨 뜻일까요…정말 너무 고국 사정에 어두워서… 저는 하루에 70마일 운전하는데, 리스도 나름 장단점이 있더라구요.

erasehead님: 차는 그렇다 쳐도,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아예 세차를 안 하구요, 비가 오면 차고에서 빼 놓죠. 그것도 게을러서 잘 안 해요.

초이님: 잘 지내세요? 영국이야 운전 필요 없지 않나요? 반대로 몰기도 좀 버겁구요…

보리님: 그 정기점검의 세 배를 썼더니 완전 파산이에요 저는…흑흑.

소냐님: 그 보스턴 Big Dig(Deep Dig 인가요? 기억이…)에 소냐님 돈 깔았다는 소식이 아틀란타에도 들리더라구요^^ 전 집이 멀어서 매일매일 출퇴근길이 시속 75마일 드라이브랍니다. 아틀란타 놀러오시면 드라이브 원없이 시켜드릴께요?

j님: 역시 일본차가 좋더라구요…잔고장도 없고. 그래도 저는 와이퍼 제 손으로 갈았답니다^^

Eiren님: 새차를 사셨군요! 만 오천마일이라니…그냥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차 얘기에 정말 다양한 반응이 오고가는걸 보니 저도 재미있네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9/06 14:26 

안습이란 안구에 습기가 찬다, 라는 말에 준말이랍니다~ 안구에 습기가 찬다는 말은 눈물난다는 뜻이죠…ㅋㅋ

 Commented by erasehead at 2007/09/06 22:24 

다치지는 않았는데,,, 덕분에 자동차 공포증이 생겼어요. ㅡㅡ; 님도 아시다시피 여기선 차가 없으면 생활 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운전을 하긴 하는데… 밤운전은 아직도 가슴이 떨려서 못 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걸어다니고 싶어요… 으앙~^^

그런데 비오면 차고에서 빼놓는다는 님의 말씀.^^

상상해보니… 너무 웃겨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9/10 10:22 

blackout님: 거 참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가끔은 전혀 딴 세상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erasehead님: 가끔은 그것도 귀찮아서 차를 꺼내놓지도 않지요. 그래서 언제나 제 차는 언제나 꼬질꼬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