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대신 먹으려고 감자를 한 봉지 사왔다, 일주일도 채 안 된 것 같다. 빵보다 훨신 싸게 먹힌다. 열 개가 넘게 들었는데 삼천 원이니까. 한 번에 서너 개씩 쪄서 하루에 한두 개 먹으면 된다. 처음 산 날 쪄서 며칠 열심히 먹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또 찌는 걸 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먹을게 빵 밖에 없는데 그건 싫고 해서 단백질 가루를 부랴부랴 쑤셔 넣은 다음 감자를 삶으려고 하는데, 그새 얘들이 싹을 열심히 낸 것이었다. 갑자기 감자에게 @나 미안했다가 정말 감자한테까지 미안해야 되나 싶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 그렇잖아 좀…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밤 치고는 잘 잤는데, 날씨 때문인가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다. 늦은 점심을 간신히 차려 먹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정말 몸이 부서져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줄 알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아드빌을 삼키니 좀 진정이 되었다. 원래 계획은 나가서 피자를 먹는 것이었는데, 날씨도 그렇고 해서 결국 시켜 먹었다. 배달 피자를 시켜 먹었으니 본연의 의미에 더 충실하는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새로운 일이 부담을 주기도 한다. 아니 사실은 부담을 주어야 맞다. 기본적으로는 나를 쪼개는 행위니까. 컨셉트와 컨텐츠는 물론이고, 화자 또는 필자로서의 나를 쪼개야만 한다. 아닌 것 같지만 나의 범위는 그렇게 좁지 않다. 웬만하면 나를 쪼갰을 때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범위에 앉힐 수 있다. 대신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다듬거나 가리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 이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다, 바로 이번처럼. 그러나 고통이 기쁨이고 기쁨이 고통이다. 고통 없이는 기쁨이 찾아오지 않고 기쁨 없는 고통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럼 삶이 너무 불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래서 글 하나를 장장 사흘에 걸쳐서 썼다. 고통스러울 때면 그 고통이 지나간 다음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보상에 대한 기대가 주어지지 않으면 신도 나지 않는다. 이번 주는 완전 블랙홀이다. 본업과 부업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의 ‘애티튜드’로 얽혀서 주말까지 마음 놓을 수 있는 날이 전혀 없으며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로 배는 터질 것 같이 부르며 오월은 어버이와 어린이의, 스승의 달이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아니므로 그들에게 지갑을 열어야만 하는 낀세대가 되어 벌써 예산 초과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차라리 비유적인 블랙홀이 아니고 진짜였으면 좋겠다. 빨려들어가고 싶다. 어둠 속에 있고 싶다. 진공이면 더 좋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중력이 없는 어딘가였으면 좋겠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두 가지의 중력이 작용한다. 물리적인 중력은 삶이므로 짊어지고 갈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중력은 그렇지 않다. 밤이 깊다. 어둠은 중력의 친구다. 어두운 것과 무거운 것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서 무거운 것을 들어보면 안다, 그게 얼마나 두려운지. 왜? 가늠할 수 없으니까.

마치 떼부잣집 아들이 강가의 맨션에서 사는 것처럼 집에서 강이 보여-라고 가끔 말하는데, 정작 술 한 잔 마시면서도 강보다 컴퓨터를 더 많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현실은 정말 뻔하디 뻔한 것 아니겠나. 아아, 컴퓨터에 강 사진이라도 띄워놔야 되겠구나. 내가 찍은 건 별 볼일 없으니 정말 부잣집 아들이 맨션에서 찍은 거 어디 없나? 딱 떨어지는 비스포크 수트 입고 한 손에는 크로노를, 다른 한 손에는 캐논에서 가장 비싼 마크 뭐시기를, 그리고 사진과 사진 사이에는 훌륭한 빈티지의 프렌치 레드를- 아아 그림 나온다, 그림 나와.

 by bluexmas | 2011/05/10 01:39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遊鉞 at 2011/05/10 01:55 

감자를 박스로 사놓고 그 위에 다른 박스를 올린채 깜빡잊고 둬서 싹을 틔우는 사람이 여기 한명…( ..) 먹히는 것들에게야 늘 미안하죠 뭐… 기왕이면 싹 나기전에 먹어치워야 희망고문이라도 안 받았을텐데 하면서요( ..)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5/10 02:19 

피자 ? 먹고싶다.

근데 그저께인가 부터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분식이 자꾸 생각나네요?

떡볶이랑 순대가 아른거림

 Commented by SF_GIRL at 2011/05/10 03:50 

감자 레몬즙하고 소금에 찍어먹으면 맛있어요.

그런데 혼자 살림에 감자 한자루 사면 참 다 먹기 힘들더라고요. 저는 얼마전에 고구마가 너무 맛나보여서 (붉은 색이 도는 미국 얌) 한자루 샀다가 꾸역꾸역 3/4 까진 먹어치웠는데 결국 남은 거 몇개는 버려야 했어요. 미안.

 Commented by 민짱 at 2011/05/10 04:07 

전 빵은 빵대로, 감자는 감자대로의 용도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게 이상하게… 잘 안먹던 것도 대신 뭘 하려고 하면 더 먹고싶은 심리가 발동하더라 이거지요…. ㅋㅋ 싹난 감자 많이 깎아놓고 요리할 때마다 쓰지 좋던걸요? 그렇게 사용해 보심이…

 Commented at 2011/05/10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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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1/05/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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