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음식 간의 질감 차이와 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야기하는가?

지나치게 특정적이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그랬는데 맥락에 맞는 것 같아서 꺼내본다. 얼마 전, 공적인 자리에서 대학 재직자를 만났다. 식문화사를 연구하는 이로써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리 관련 문헌이 많이 남아 있지도 않지만 여성의 일이었다 보니 내용이 자세하지 않아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먹기 좋게 썬다’라는 문구가 나왔을 경우 수치로 크기가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는 요지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조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걸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가 이야기하는 사료에 따른 어려움은 당연히 일리가 있다. 내가 역사를 파고들어야 하는 연구자의 입장은 아니지만 음식 평론가로서 큰 그림은 알고 있다. 사료가 많지 않고 조리법이 자세하지 않기는 하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내가 조리를 할 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직접 하다 보면 재료에 따라 ‘먹기 좋게 썬다’는 것이 어떤 모양과 수치인지 체득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오이 하나를 놓고도 고추장 무침을 만들 때와 쌈장에 찍어 먹으려 할 때 써는 모양과 치수가 다르고 그에 맞춰 그야말로 자연스레 대처할 수 있다. 이게 연구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아예 조리를 못 해서 모르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우연히 어떤 다른 분야(라고 짐작되는) 연구자의 트윗에 내가 소환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추구하는 질감의 차이는 일리가 없지 않으며 나도 70% 정도는 동의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과관계가 역전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씹는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그렇게 조리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조리를 잘 못 해서 모든 음식을 중간 단계 없이, 활어회와 웰던 고기처럼 극과 극으로 조리하거나 조리하지 않고서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먹는 걸까?
현재 한국 식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인 베이글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씹는 맛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베이글은 원래의 모습대로 사랑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부드럽다 못해 떡 같은 베이글이 ‘질기지 않아서 좋다’고 사랑받고 있다. 한마디로 씹는 맛 선호 경향도 잘 들여다보면 일관성이 없다. 왜 그럴까? 사실 편의성 등을 좇기 위해 재료의 속성이나 조리의 이상형(理想型)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접근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수도 없이 더 들어줄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이미 졸저 ‘한식의 품격(2017)’에 지나치게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으므로 관심이 있는 이라면 찾아 읽는 수고 정도는 하리라 믿는다. 학계에 속한 사람은 아니지만 연구자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연구라는 걸 안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나는 다른 분야, 특히 인문학 종사자들이 음식과 조리의 물성이나 육신성, 또는 이과적 측면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좌절한다. 그들이 너무 모르고 입을 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모르는 것을 알기가 생각보다 매우 쉽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의 이론을 연구 및 비평하는 이들이 실제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영화 연출이나 악기 연주를 할 줄 몰라도 영화 및 음악 평론가를 할 수 있다. 유명한 프로듀서인 릭 루빈은 실제로 악기나 음향기기를 다룰 줄 모른다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명반을 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에 매우 밀착되어 있으므로 음식과 조리에는 한편 예외적 측면이 있다. 사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할 일도 아니긴 한데, 다들 자기 분야 아니면서 입 여는 걸 보면 음식과 조리에 대한 학문적 접근 또는 연구를 좀 가볍게 알고 있는 건 아닌가 늘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