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동] 기가스-어중간함의 향연

서울의 구도심, 심지어 자동차도 대기 어려운 입지의 건물에서 ‘팜 투 테이블’을 표방하는 레스토랑 운영이 가능할까? 과연 어느 정도 ‘팜’에서 식재료를 조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레스토랑이 진정 ‘팜 투 테이블’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 탄소발자국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거리가 중요한데, 서울 특히 남창동(남대문시장 인근)이라면 배태적으로 어렵다. 기가스의 농장은 40킬로미터 떨어진 경기도에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가깝지 않다.. 더 가까운 농장으로부터 계약 재배를 통한 사입을 한다면 차라리 그편이 더 ‘팜 투 테이블’의 의미에 충실하지 않을까?

재료 조달의 비율 또한 중요하다. 식탁에 소품으로 크고 잘 생긴 레몬을 올려 놓았기에 나는 직원에게 이것도 가족 농장에서 조달한 것이냐고 물었다.  레몬이니만큼 그러기 어렵겠지만, 설사 아니더라도 크기를 감안할 때 제주산이 아닌 것 같아 물어보았다. 직원은 가족 농장에서 오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해 주었다. 미슐랭 가이드의 레스토랑 페이지에는 ‘모든 재료’ 혹은 ‘채소의 95퍼센트’를 농장으로부터 조달 받는다고 밝히고 있다(그렇다, 한 페이지에 조금 다른 정보 두 건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

그런 수준이라면 ‘팜 투 테이블을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서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고 있다’며 ‘ㅍ’이라도 입에 담는 게 정체성 구축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 보지 않는다. 일단 미슐랭 별 정도인데 그런 수준으로 운영하지 않는 레스토랑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도 하거니와 팜 투 테이블 컨셉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더욱 그렇다. ‘팜 투 테이블’ 이전에는 지역 및 제철 재료 컨셉트가 있었고 이들의 핵심은 제약이었다. 일련의 조건을 정해놓고 그를 준수해 요리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창의력을 시험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오래 전에 옮긴 오래된 책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에는 1990년대 미국 북서부(시애틀) 파인 다이닝 씬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이야 각광받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고, 셰프들은 지역과 철을 엄수하는 요리 세계를 정립하느라 애를 썼다. 백 퍼센트 지역과 제철의 철학을 엄수하고자 앞서 언급한 레몬 같은 필수 식재료도 피했다. 그런 개념이 좀 더 진지해지면서 댄 바버의 사례처럼 농장에 레스토랑을 들어 앉히거나 나파 밸리의 이름 날리는 곳들처럼 바로 문 앞의 땅에서 밭을 갈아 채소만이라도 직접 가꿔 쓰는 개념들로 발전한 것이다. 당연히 제약을 받지만 그 반대급부로 최선의 신선함을 얻는다는 만트라가 작용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기가스든 어디든, 농장이 레스토랑에 근접할 수 없는 입지인데다가 제약을 걸어 스스로를 시험하지도 않는다면 과연 지금의 현실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해를 하려고 해도 어중간하게 보일 수 밖에 없고 실제로 음식이 전반적으로 어중간했다. 계절이나 지역성 같은 걸 준수하겠다기에는 야심이 커서 각 요리의 구성 요소가 지나치게 많은데 코스가 진행되면서 완성도도 점차 무너진다. 미리 준비하는 요소가 많은 찬 음식은 맛도 완성도도 좋게 내지만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한국 파인 다이닝의 전형적인 패턴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두 주요리 가운데 먼저 나온 쇠고기 안심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매우 실망스러웠다. 파인 다이닝, 특히 미슐랭 별 하나 정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완성도와 거리가 멀달까? 소스를 포함한 각 요소들을 접시에 늘어놓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한 차례 승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좀 더 완결된 요리가 되었어야 한다. 셰프는 ‘이것이 우리의 컨셉트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나는 실력 부족이라 보았다.

그렇게 코스 전반에 편집이 필요해 보였다. 이 많은 요소들이 과연 맛을 위한 것일까? 혹시 만드는 사람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닐까? 정확히 팜 투 테이블이라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보다 재료의 힘을 믿고 좀 더 과감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만큼 내놓으려면 성실해야만 하고 그건 높이 사지만 파인 다이닝은 단순한 조별 과제나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 이런 맛이 가능하구나!’라는 깨우침의 순간이 코스 전체에서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었고 완성도도 견고하지 않았다. 셰프의 비전에도 편집이 필요해 보였지만 그마저도 요리사들이 다 못 살려내는 것 같았다.

* 식사 비용: 353,000원(코스 250,000원, 와인 세 잔 103,000원)

사족들

1. 접객과 가볍게 맛만 본 와인은 좋았다. 사실 공간도 매우 좋아서 느긋하게 와인을 곁들여 토요일 점심 정도 먹기에 좋다고 보았는데…

2. 실행이 제대로 된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요리를 추구한다고 보았는지라 우툴두툴한 질감의 식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공간이나 식탁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추구하고 싶은 바는 이해했으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질감은 매끄러운 식기가 필요해 보였다. 

3. 요리의 성격에 맞춰 빵을 내는 제스처는 좋았지만 정작 완성도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특히 깡빠뉴는 껍데기가 두껍고 무겁고 질겼다. 다양성 차원에서도 탄수화물을 따로 준비해 곁들인다면 포카치아와 깡빠뉴를 이어 내는 건 그냥 둘 중 하나를 계속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편이 레스토랑 운영에 더 나아 보인다.

4. 요즘의 지평을 감안하면 미슐랭 별 레스토랑에선 커피도 네스프레소 수준을 졸업할 때가 됐다.

5. 맨 마지막 ‘어머니 레시피의 구움과자’는 사연도 맛도 좋은데 굳이 뜨겁게 데워 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온도가 높아서 되레 맛을 잘 느끼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