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n Promises (2007)- ….

어느 해 크리스마스의 런던, 병원에서 산파로 일하고 있던 Anna(Naomi Watt 분)는 거리에서 하혈을 하고 병원에 실려온 열 네살 짜리 러시아 여자아이의 아기를 받게 됩니다. 결국 아기의 엄마는 출산 중 세상을 뜨게 되는데, 유품으로 남은 다이어리-러시아어로 쓰여진-를 실마리 삼아 아기에게 엄마의 가족이라도 찾아주려는 시도는 그녀의 삶을 전혀 예기치 못한 세계로 향하는 길로 발들여 놓게금 만듭니다.

영화를 계속해서 보다보면, 어떤 영화는 정말 거지같다고 생각되는데도 결국에는 좋아해서 보고 또 보려고 DVD까지 사게 되는 경우가 있고(저에게 이런 영화의 대표적인 경우는 Underworld Evolution입니다. 입에 담으니 또 보고 싶어지네요…-_-;;;), 또 어떤 영화는 정말 여러가지 이유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보고 난 뒤 입맛이 쓰고, 더 심하게는 보았다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경우에까지 이르게 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았다는 기억마저 지워버리고 싶지 않지만, 이 영화는 보고 난 뒤 오랜동안 그 쓴 입맛이 가시지 않는데, 아마도 그러한 감정이 바로 영화 감독이 청중으로 하여금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는 폭력이 넘쳐나고 유혈이 낭자하지만, 단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이 불편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사람을 죽여대는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닐텐데, 그런 종류의 영화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껴야만 할 테니까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쓴 입맛, 불편한 감정의 켜를 하나 둘 씩 들춰내면, 저같은 경우 그 바닥에 영화 내내 그 폭력과 유혈의 바탕이 되는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닥치는대로 쏴 죽이고 또 죽여서 죽음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는 영화들(가장 최근의 예로 지지난주엔가 보았던 Shoot’em Up이 있죠. 이 영화에서 죽음은 그저 웃음의 도구일 뿐입니다)과 달리, 몇 건 벌어지지 않는 이 영화의 살인 속에서 총은 전혀 쓰이지 않습니다. 단지 칼만이 쓰일 뿐이죠.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던지고 맞춰서 죽이는 경우를 빼 놓고 칼로 사람을 죽이려면 거의 대부분 살인자는 피살자와 피부접촉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칼의 영향범위 안에서 사람을 죽을만큼의 치명타를 안겨주고, 그로 인한 출혈이 총으로 인한 그것보다 느리고 고통스럽게 피살자를 요단강 너머로 인도할테니까요. 그렇게 신체접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면서도 죽이는데 능숙한 이 살인의 프로들은 거의 대부분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 덤덤함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영화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아마추어의 살인과 비교해 볼때 참으로 대조적인(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느낌을 안겨줍니다. 뭐 쓰다보니 너무나 당연한 얘기만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하여간 이렇게 육체적(?)인 영화 속에서의 살인은 저로 하여금 폭력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적어도 며칠 동안은 징하게 곱씹도록 만들었습니다.

뭐 이렇게 죽이러 다니는 행동대원들이 차분하니, 그 위에 계신 분들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차분함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혼자 정신 못차리는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들 Kirill(Vincent Cassel 분, Ocean’s 12 & 13의 도둑 François Toulour 역을 맡았던 바로 그입니다)을 빼놓고는 아예 감정 따위는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는 이렇게 배우들이 늘어놓는 연기속에서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끼고만 있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바로 이런 불편한, 징한 구석이 이 영화의 매력이면 매력이겠지만, 그렇게 크나큰 불편함의 강을 이루며 흘러가는 영화는 생각보다도 작은 줄거리의 물줄기를 제대로 마무리 지어주지 못한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결말의 바다로 흘러가고 맙니다. 영화가 결말로 가면서 크다면 그고 작다면 작은 반전과 암시들을 조금씩 늘어 놓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영화가 조금이라도 닫히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는게 제 느낌이었으니까요. 뭐 하나하나 펼쳐 놓은 이야기의 흐름들을 마무리 지으면서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도 때로 너무 감독이 여지를 주지 않아 융통성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을 결말이라고 내어놓으면서 나머지 영화를 보면서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들은 그냥 놓아 버린채 닫아버리는 이 영화는 아무래도 저같은 무식쟁이가 보기에는 너무 거장스러운 것이 아니었나, 하는 촌스러운 의문을 가지게금 만들었으니, 저보다 영화와 감독에 대한 이해가 많은 분들이 보신다면 이런 느낌이 훨씬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참,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노라니 정작 주연배우 Viggo Mortensen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이 글이 끝나려 하고 있는데, 저 위에서 언급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차분함’ 의 왕이 바로 그입니다(주연배우 말고 또 누가 될 수 있겠냐만…). 영화 초반부에서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죽은이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그것도 태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같은 손가락 잘리는 장면이었음에도 왜 Shoot’em Up에서는 웃었고 이 영화에서는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가리다시피 했는지 스스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현실이 징하니 그걸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실도피적이고 텔레토비스러운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잘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약간은 버거웠던 그런 한 편이었습니다. 

 by bluexmas | 2007/09/29 13:23 | Movi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보리 at 2007/09/30 10:59  

보고싶은 영화 중 하나인데, 음, 저한테도 버거울 듯도 하네요… 비고 몰텐센은 GI 제인에서의 비열한 연기에 매우 불편해했던 배우인데 이번에도 그런가보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0/01 13:15 

GI 제인은 하두 드문드문 봐서 기억이 안 나는데, 사람들은 같은 배우와 감독의 History of Violence를 언급하더라구요. 어쨌거나 꽤나 불편했답니다.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10/01 22:06 

저도 얼마 전에 불편한 영화 하나 봤어요.

라스트 킹이라는 영화였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서 그런지

더 찜찜했었던 것 같아요. (각오하고 봤는데도 음…;)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0/04 13:10 

핑크님: 가끔 저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는 참 피하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