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과 R
寧, 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타이완계 여자애가 있었어요. 대학원때 같은 반이었는데 뭐 이름만큼, 까지는 아니어도 얼굴도 예쁜…
그런데 이 아이는, 저처럼 동양에서 공부하러 온, 그러니까 자기처럼 태어나서 죽 산게 아니라서 영어가 구린 애들하고는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참으로 유명했죠. 제가 사는 Georgia나 그 아이가 살았다는 Alabama 내지는 그 이웃 동네 남부 주들이 알게 모르게 다른 주들보다도 인종차별 같은게 심해서(가끔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이 동네에는 아직도 있답니다…믿거나 말거나), 아마도 어릴때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애들한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꽤나 괴롭힘당했고, 그로 인해서 저와 같이 영어 구린 동양애들과는 상종하기 싫어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그때는 막연하게 들었었죠. 자기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중국말도 못하고 영어는 잘 하니까 미국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인식하니 저 같은 애들과 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기 싫었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 아이와 친한 애들을 비롯한 다른 미국애들과 계속해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뭐 결국에는 저와도 얘기하고 지냈지만, 저는 끝까지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마주치니까 얘기를 할 뿐, 그 아이가 저같은 동양출신 애들과 얘기하기 싫다는 사실을 빼고라도 그렇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저와 스튜디오를 한 번 같이 했는데 그 다음 학기에 스튜디오를 같이 한 남자애와 연애를 하더니 결국 최근에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R
R은 회사에서 일 잘 한다고 소문난 젊은 디자이너들 가운데 하난데, 성으로 볼때 아일랜드 계로 추측되는 이 친구는 또 동양인들에게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안 시키는 것으로 꽤나 유명하죠. 제가 거의 3년째 이 회사를 다니는데, 마주치면서 Hi 한 번 한 적 없거든요. 저는 원래 인사를 아끼는 체질이 아니긴 하지만, 이 친구는 마주치면 눈빛이 거의 경멸에 가까워서 제가 먼저라도 인사를 할 수가 없었죠.
그런 그와 어제 오늘, 일을 같이 했어요. 뭐 같이 했다기 보다 제가 그쪽 팀을 도와줘야 될 상황이라서 이틀동안 단순한 도면 그리기 노동을 했던 것이죠. 세상에, 거의 3년 동안 같이 회사 다니면서도 인사 한 번 한 적 없는데 같이 일하려니 참으로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그 친구가 동양애들한테 인사 안 한다는 건 회사 동양애들이 거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알고 있다는 티를 같이 일하면서 낼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더군요. 뭐 그래서 말을 아주 줄였죠. 어차피 일 도와주는데 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고쳐야 될 도면을 받아다가 고쳐 그려주고, 그게 끝나면 새 도면을 뽑아서 가져다 주는 것 뿐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으로 이상하더군요. 뭐랄까, 뭐 서로 감정 상한 일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되는 관계인데,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동양인이라서 저를 경멸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설사 그렇다면 저는 또 그 친구가 이유불문하고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그 혐오감에 장단 맞춰줄 여지를 제공하고 싶지 않으니 약간의 오기를 가지고 일을 해야만 되는 상황인거죠. 게다가 일은 또 지독하게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또 그런 일일수록 생각없이 하다가 실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경이 곤두서는지… 고칠 것들 다 고치고 가져다 주기 전에도 자체적으로 여러번 점검을 해서 시간에 맞춰 가져다 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은 편하지 않더군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이런 일이 생겨도 요즘은 그저 남의 나라 사는게 다 그렇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이지만, 참 이건 약간 호랑이 굴에 가서 일하는 기분이었다니까요.
그나저나, 이제 같이 일도 해 봤으니 월요일부터는 마주치면 인사라도 할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 by bluexmas | 2007/12/08 13:40 | Life | 트랙백 | 덧글(7)


저도 deep south에 살긴하지만 제가 목소리가 커서인지;;
아님 생긴게 워낙 동양인답지않아서인지 -_-;; 그닥 못느끼고살았거든요.
저런일이 회사나 가까이에서 있으면 거참 껄끄럽겠어요..
bluexmas님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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