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Born Chinese-진부한 소재, 재미있는 전개
어제 쓴 글의 책 365 days-Memoirs of Intimacy를 읽는데는 365일은 아니어도 한 달이나 걸렸지만, 이 글에서 얘기하려는 책 ‘American Born Chinese’는 단 50분 정도면 충분했다. 신도림에서 오산역까지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이 책이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미국계 중국인인 저자의 자전적인 얘기이고, 그렇다면 담고 있는 얘기는 뻔하고 싶지 않아도 뻔할테니까. 유색인종으로써 백인들 사이에서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뭐 기타 자질구레한 문화적 충격 등등, 너무나 많이 들어 공감은 하지만 딱히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그런 것들.
작가가 그런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어디엔가 인터뷰 따위를 뒤지면 나올지도), 그는 자기 자신의 얘기를 그저 선형적으로 늘어놓기 보다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다른 이야기-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와 섞어 보다 극적인 구성을 강화-무려 반전마저 있다-하고 이는 너무 뻔해서 이젠 미국 사회에서도 먹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얘깃거리에 활력소를 불어넣는다. 거기에다가 ‘중국계니까 중국 느낌이 조금 나네’ 라고 말해도 딱히 반박은 할 수 없을 듯한 분위기의 그림과 색감은 뛰어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책들이 근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약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던 것처럼 이 책에는 반전 비슷한 극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그 반전이 가지는 당위성이 조금 약하다. 달리 말하면 이야기의 흐름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서유기와 또 다른 이야기들을 섞어서 흥미와 긴장을 유발시키다가 끝 부분에서 그 각각의 이야기가 가지는 당위성이나 메시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하나로 엮으려 하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서도 선뜻 작가가 말하려고자 하는 것에 그렇게 쉽사리 공감할 수가 없었나고나 할까? 이게 또 나름 반전이라 영화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자세한 언급을 피하는 것처럼 두리뭉실 얘기하려고만 하니 나도 정확하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약간 헛갈리려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였다. 특히나 만화로 구성된, 작가의 그림이 정말 돋보이는 서유기를 보는 재미는 굉장해서, 작가가 자신의 순수 창작도 좋지만, 이렇게 자신의 해석이 더해진 중국 고전의 만화판 같은 것들을 그려도 재미있을 것라는 생각을 했다.
뭐 찾아보면 이런 종류의 미국 내에서의 유색인종의 삶, 그에 따른 문화적 충격이나 소외감 등등을 소재로 한 책들이 많겠지만, 재작년엔가 읽었던 Adrian Tomino의 Shortcoming을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간 어딘가에 작가처럼 일본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친구인 한국계 미국인인 여자의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들과 겪어 보지 않았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상황이 묘사되는게 그게 어이없이 웃긴다.
# by bluexmas | 2009/05/07 10:48 | Book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