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대상
나는 나의 가장 만만하며 악랄한 애증의 대상이다. 많은 타인들을 미워하지만, 사실은 그들보다 나를 더 미워한다. 문제는, 스스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만큼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증의 불균형은 우울함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울함의 화수분으로 작용한다.
술을 잔뜩 먹은 다음 날 아침엔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 버겁다. 잘못된 선택의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모여 내가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택도 다 내가 한 것들이니, 내가 나를 망친 셈인가? 중요한 약속 덕택에 생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겁지겁 샤워하고 나와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술을 마셨냐고 물어보았다. 냄새가 난다고. 부끄러웠다. 날씨마저 딱 내 기분처럼, 눅눅하면서 차가웠다.
일을 마치고 약을 사 먹고, 커피를 마시려 했지만 마실 수 없었다. 그래도 잠깐 걸었다. 음악은 듣지 않았다. 싫은 그 모든 소리를 그대로 들었다. 마치 스스로에게 벌이라도 주는 것처럼. 상보다 벌을 주기가 더 쉽다.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에게 주는 게 더 쉽다. 나는, 나의 가장 만만하며 악랄한 애증의 대상이니까. 덕분에 삶이 지루할 새가 없다.
순대국으로 해장을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이를 악물고 콩나물을 한 봉지 사들고 들어왔다. 집 앞 경로당의 목련은 아직도 꽃잎을 좀 달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안타깝거나 아쉬워할 때 쓰게.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 by bluexmas | 2011/04/26 22:04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