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불스원샷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와 나도 저런 아들 딸 낳고 싶다’가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이제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옆옆집의 아이들이 그렇다. 남맨데 남자아이가 크고 여자아이가 작다. 내가 남자라 그런가-_- 여자아이가 더 예쁘다. 당연히 남자아이가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아이가 문을 열고 복도에 빨래를 널거나 하면 가끔 와서 기웃거리는데, 어제는 내 얼굴을 보더니 ‘이상해’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갔고, 오늘은 나가는데 엘리베이터 홀에서 마주쳤다. 친해지고 싶어서 ‘오빠는 어디 갔어?’라고 물었더니 ‘나 오빠 없어요.’라고 대답을… 알고 봤더니 얘가 누나고 큰 남자 아이가 동생, 또 여자아이는 여덟 살이라 학교 들어갔고 동생은 아직 유치원 다니는 꼬꼬마였던 것이다. 방학했으니 집에 있는 것일테고…작고 어려보여서 한 여섯 살쯤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 큰 아이여서 좀 미안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손가락까지 쫙 펼쳐서 여덟 살이라고 대답하더라^___^ 다음에는 이름을 물어보고, 그 다음다음다음 쯤에는 만들어 놓은 거 있으면 좀 가져다 줄 생각이다. 물론 아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할 생각은 없다. 뭐랄까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하략)

모처럼 좀 여유를 부리며 산다. 그것도 사실 사흘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식탁과 싱크대에 상판을 깔고 싶어서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보는데 아이패드님이 도착하셨다. DHL직원이 씩 웃는게 산타할아버지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분께서는 6개월 할부로 선물을 주시지는 않는다. 이건 선물이 아니고 내 돈 주고 산 것이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돈을 좀 모아 두었다가 겨울쯤에 여행을 가려고 생각했으나 이런 추세라면 뭐 고드름 따다가 설탕 뿌려 빨아 먹을 기세다. 이사하고 신경쓰지 못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보충하느라 진짜 지출이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다. 그래봐야 뭐 얼마나 살겠어…라고 생각하면 또 재미가 꺾이기도 한다. 어쨌든 오늘은 예전 집에서 2년 동안 묵혀두었던 선반도 달고 운동한 뒤 목욕탕도 갔다왔다. 집은 정리를 계속 하고 있으나 이런 추세라면 장담하건데 ‘와 진짜 사람사는 집처럼 되었다!’라고 할 시점에는 슬슬 다른 집을 알아볼 것 같다. 어째 인생은 떠돌이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바에 잠깐 들렀는데 옆옆 자리에 앉으신 묘령의 여자분께서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는 거의 피우지 않으시는데 그 담배를 쥔 손이 바로 내 얼굴로 향해 솔솔 타는 담배 연기가 그대로 눈코입으로 날아들었다. 원래 흡연공간인 곳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거니 내가 뭐라 할 말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마냥 방치해둔 연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좀 신경쓰시면 얼마나 더 쿨해보일지 그분은 갓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셔서 모르시는 것 같아 보였다. 나도 지하철이 4호선까지만 다니던 시절에 담배 피우면서 그런 거 배웠구만 참…

집에 돌아오는데 바람이 안 시원한 듯 시원해서 밤을 불사르는 젊은이들을 피해가면서 좀 걷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내려서도 가장 먼 길을 골라 걸어 돌아왔다. 용서할 줄 모르니 용서받지도 못하고 산다. 그런데 용서 안하고 안 받아도 그럭저럭 살게 된다. 삶이 엔진이면 나의 경우 증오가 옥탄가가 가장 높아 주 원료, 행복이나 이상이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대체 연료다. 용서는 그저 냉각수나, 일만킬로마다 넣는 불스원샷 정도가 되겠다. 증오의 옥탄가가 너무 높으면 피스톤이 타버리므로 일만킬로쯤 이 풍진 세상 굴러먹었다면 반드시 불스원샷, 아니 용서를 한 병 정도 부어줘야 한다. 그리고 피스톤이 내뱉는 환희의 탄성을 즐겨봐라.

 by bluexmas | 2011/07/21 01:57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Deathe at 2011/07/21 03:02 

레드불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1 03:03

그건 박카스 사촌인디유 ‘ㅅ’

 Commented by sasac at 2011/07/21 12:16 

벌써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생각하시면 아니되시와요..그 나이는 아직 새파란 청춘이랍니다..

지금 오글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울고 계시나요?

마지막…쎕니다.

왜 센지는 저도 잘 모르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3 16:18

새파란 청춘은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11/07/21 14:16 

그편이 살기 편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3 16:18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settler at 2011/07/22 01:19 

용서는 상대가 그걸 deserve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청하는 거라고,

그렇게 용서를 구하던 친구가 있었지요 아직도 용서가 뭔지 어떻게 주고 받는 건지 저도 모르지만, 그게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는 건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3 16:19

딱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