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소설 한남-성실함의 양면

먹고 나오는데 일단 기분이 좋았다. 만약 내가 그저 좋은 레스토랑을 찾는 보통의 1인이었다면 생각은 아마도 여기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인이니까 거기까지만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어떤 면이 즐거웠는가? 일단 매우 성실했다. 점심 고정 코스(17만원)에 여덟 가지 요리와 매우 훌륭한 밥(아마도 코스의 정점), 디저트 몇 가지에 차도 나온다.

혹시 단순한 가성비에 매혹된 건 아닐까? 그래서 찬찬히 좀 더 생각해 보았다. 요리의 개별적인 완성도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공교롭게도 어류의 조리가 전반적으로 가장 떨어진다 느꼈지만 그 또한 실패는 아니고 최적구간에서 살짝 비껴 나간 정도였다. 한마디로 꽤 많은 가짓수의 요리가 나오는데 대체로 완성도가 좋다. 그렇다면 단순한 가성비라기보다 성실함으로 이해해야 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맛은? 식사 이후 쭉 복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맛의 기억이 한 켜씩 벗겨서 이탈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몇 가지 음식의 맛이 좋은 인상으로 아직 남아 있다. 패류(왕우럭조개와 전복)의 선도와 조리, 맛이 매우 휼륭했다. 완두콩밥과 직접 뽑은 백강밀 국수 두 가지, 그리고 디저트의 딸기 바람떡의 수준이 최고였으니 곡물을 잘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르베의 참외 풋내도 매우 상큼했다.

이처럼 매우 훌륭하고 또 인상적인 몇몇 요리들과 함께 코스 전체의 흐름을 쭉 복기해보니 흥미로왔다. 분명 좋기는 좋았지만 요리들이 매우 일관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특히 파인다이닝에서 중요하다 느끼는 맛들이 배제되어 있었다. 특히 신맛은 첫 번째 코스의 두 번째 요리인 ‘쌈’의 된장 정도에서 잠깐 선보일 뿐, 이후의 음식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돌아보면 지방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에 신맛이 필요한가? 라고 스스로도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신맛은 굳이 지방을 갈라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맛의 표정 전체를 아울러준다. 말하자면 용의 눈을 찍어주는 역할이 신맛인데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니 코스가 뒤로 가면서 쌓일 수록 조금씩 답답해졌다. 물론 와인을 통해 음식에서의 신맛 부재를 원칙적으로는 상당 부분 상쇄해줄 수 있는데, 문제는 코스 전반에 걸쳐 단맛의 세기가 상당했다.

음식이 일정 수준 이상 달면 와인이 압도되면서 물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단맛이 쓰일 거라 예상한 세 가지 요리에서 전부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신맛은 거의 배제되어 있고 소금보다 설탕으로 맞춘 간이 더 세다. 어떻게 보면 파인 다이닝이 지향하는 맛의 표정이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것이 이제 한국-서울의 맛이라고 볼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나는 아쉬움도 일정 부분 같이 씹어 삼켰다.

과연 이건 셰프가 추구하는 맛일까, 아니면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여기’에서 파인 다이닝이 갖춰야만 하는 표정이라고 본 맛일까? 신맛의 부재가 입가심 디저트인 참외 소르베에선 상당히 아쉬웠다. 디저트라면, 그리고 이정도로 잘 다듬은 맛과 질감이라면 신맛 약간이 불러 일으킬 시너지 효과를 알기에 내 입장에선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조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크게 흔들림이 없는 가운데 도다리와 아구, 두 생선 요리에서 조금 묘했다. 날로 먹는 감성돔과 두 가지 패류는 또 훌륭했기에 익히는 파트에서 뭔가 그날따라 잘 안 풀렸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메뉴엔 재료만 나열하고 있는데 (내향인들로 보이는) 스탭들이 요리를 가지고 나와서 너무 길고 힘들게 설명하는 것 같아서 정보의 일부를 더 수록해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음식의 형식 혹은 조리의 문법 정도만 더 알려주면 어떨까?

나는 이 성실함이 왜 양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가격에 비해 요리의 가짓수가 많고 또 완성도도 상당히 일관적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으로만 본다면 별 하나가 아니라 둘이더라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또 곱씹어 보면 신맛은 전혀 없고 단맛은 매우 강한 이 일관성이 혹시 셰프 자신이 추구하는 맛이라기 보다는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시도는 아닐까 싶어 성실함이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많은 이들에게 이곳의 성실함은 그냥 하나의 얼굴로 보이리라 믿는다. 나는 낮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싶지 않아 잔으로 주문했지만 17만원의 식사에 11만원의 와인 짝짓기, 도합 28만원에서 이래저래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음식은 견실하고 공간과 접객에도 확실한 분위기가 깃들어있다. 그래서 식사를 즐겁게 하고 나왔는데 이후 이곳에서 제시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자꾸 생각난다면? 당신은 성실함의 이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