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세븐스 도어(*)-정작 소외되는 음식

레스토랑을 갔다 오면 적어도 한 달 동안 먹은 음식이며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름의 숙성을 시키는데 많은 음식들이 길다고 하기 어려운 시간을 잘 버티지 못한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만하면 다행이고, 긍정적이라 여겼던 것들이 곱씹어 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븐스 도어’의 음식, 아니 경험이 그러했으니, 먹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 곱씹어 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많은 음식이 기억에 없다. 물론 오십 대에 접어들면서 내 기억력이 확실히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확실한데 그게 분명 전부는 아니다. 열린 공간과 요리 자체의 극적 요소(theatrics)를 걷어내고 나면 강한 인상이 남지 않는다. 장류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몇몇 짠맛과 감칠맛이 파편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런 가운데 단 하나 전체를 기억하는 유일한 메뉴가 식사 중간쯤의 ‘대천김’이다. 셰프의 이름이 김대천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양념한 대천김에 밥을 올린다. 그리고 캐비아를 매우 푸짐하게 얹어 내민다. 분명 맛이 있지만 곱씹을 수밖에 없어지는 메뉴다. 캐비아를 얹는 순간 사실 재치 있는 김과 맛있는 밥은 상당 부분 의미를 잃는다. 직관적으로 맛이 있다고 느끼지만 개념적으로는 글쎄,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농락당하는 기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들었다. 김도 밥도 캐비아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말하자면 세븐스 도어는 설정과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찬 레스토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바로 아래층에 ‘톡톡’이라는, 셰프의 또 다른 레스토랑이 있었다. 상호가 왠지 낯익어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장식적인 요소가 지나치다는 2013년의 혹평을 찾았다. 셰프가 그동안 살아남아 미슐랭 별 하나의 또 다른 레스토랑을 일궈냈다면 높이 살 일이다. 하지만 그 방법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주요리에 백김치를 구워 곁들이는데, 사실 한국식 직화구이에서 김치를 굽는 건 상당 부분 지방에 의해 증폭되는 고춧가루의 맛과 향 때문이다. 그런데 고춧가루가 아예 배제된 백김치라면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마지막으로 내놓는, 나무 상자에 담긴 한입거리들도 그렇다. 상호의 ‘7’의 모양을 내려다보니 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지난 8월 언젠가, 나는 세븐스 도어의 문을 상당히 흡족한 마음으로 나섰다. 이만하면 훌륭한데? 하지만 시간을 두고 찬찬히 곱씹어 보니 그건 일종의 착시였다. 공간과 환경과 빛나는 달걀 모양의 커틀러리 케이스, 국가와 브랜드 별로 골라 쓸 수 있는 나이프 등등에 휘발적으로 매료되었을 뿐, 정작 음식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특히 미슐랭 별을 받을 정도라면 음식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경험까지 훌륭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매우 훌륭하지만 정작 그러느라 음식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린 공간을 비롯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기믹’이 이제 어떤 임계점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신이 관광객이 아니라면 이런 레스토랑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