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은 12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세 시

그냥 며칠 있으면 자리를 비울거라서 지금 해야 하고 또 하고 있어야만 하는 일들에 관심을 잃은 걸까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침대와 소파를 왕복하면서 책을 읽었어요. 만화책-이라기 보다는 허울 좋은 Graphic Novel-을 포함했지만 그래도 영어책을 하루에 두 권이나 읽다니,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지더라구요.

어제, 오늘은 정말 봄날처럼 따뜻해서, 어제는 낮잠 자는 것도 포기하고 공원에 나가서 돌아다녔는데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남녀커플이 기타랑 키보드를 들고 나와서 노래를 만들더라구요. 그게 어찌나 부러워보이던지요. 정말 요즘은 누군가의 삶이 부러워보이는 적이 거의 없는데(내가 너무 잘 나서,는 절대 아니고 부러워해봐야 다른 사람의 삶은 내 삶이 아니라는 걸 이젠 아니까), 그 아이들의 삶이, 적어도 그 순간에는 무척 부럽게 느껴지더군요. 저에겐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구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 호기심 비슷한 것들이 마음 속 깊은 어느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조금은 아쉽다고 생각되는 어떤어떤 갈림길들에서 지금 이 삶을 만들고 있는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떨까…뭐 그런 것이겠죠. 아주 큰 삶의 틀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는 몇몇 사고들은 피했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말하기 싫은 얘기들, 보여주기 싫은 그늘들, 뭐 그런 것들…

트렁크는 진작에 꺼내놨는데,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이유는 이미 그 과정들을 머리 속에 끝없이 떠올리기 때문이겠죠. 쌀 물건들을 다 꺼내고, 트렁크에 넣어보고, 잠궈보고, 또 들고 체중계에 올라가서 무게도 확인해 보고…아주 가끔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계해요, 바로 지금처럼.

 by bluexmas | 2007/12/10 15:54 | Life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by 笑兒 at 2007/12/10 16:11 

햇볕이 부러워요~ 햇볕안나온지 몇일 된 이동네는 ㅠㅠ

작년에 안온 눈까지 한꺼번에 오려나봐요 -ㅅ-;;

 Commented at 2007/12/10 23: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12/11 01: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재인 at 2007/12/11 01:42 

빛이 좋아요. 벽난로 위엔 술병인가요? :p

 Commented by 소냐 at 2007/12/11 05:28 

봄같은 12월의 하루라니.. 부러워요.

저는 제가 안가본 인생의 길을 아직도 궁금해하며 또 그리면서(?) 살고 있어요…. 별로 현명한 태도는 아니지만요….

 Commented at 2007/12/11 08: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2/11 11:48 

笑兒님: 오늘은 거의 여름날씨라 반팔 입고 다녔어요. 이런 얘기하면 부러워하시려나…

비공개 1님: 반갑습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저도 가끔 징징거린답니다…

비공개 2님: 그래도 답글 달아주시면 좋죠… 무슨 얘기를 듣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로부터 듣는가도 중요하잖아요^^

재인님: 네 술병이랍니다. 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들이라고… 낮시간에 집에 있는 경우가 없다보니 낮에 빛이 좋은 것도 잘 모르고 살아요.

소냐님: 저는 솔직히 별로 그리지는 않아요. 그래봐야 피곤하기만 하다는 걸 알거든요.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도 하고 또 부족한 것도 많으니까요.

비공개 3님: 저도 코르크 마개 담아 놓는 병이 저 사진 오른쪽 끝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