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폐지하자

명절이 되었으니 또 제례를 타파하자는 글을 썼다.

음식에 있어서 할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의 ‘우리 엄마/할머니 정말 음식 잘하셨다’의 수준을 넘어섰으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한 뒤로 이모들 결혼식엔 할머니가 만든, 삶은 계란을 넣어 누른 돼지머리 편육이 동원되곤 했다.

(삶은 계란을 넣는 게 보통 편육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주변에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켜도 훨씬 예쁘고 맛도 더 좋다.)

덕분에 정말 좋은 걸 많이 먹고 자랐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명절에 대한 기억은 나빠진다. 그 많은 사건사고들을 잊지 않고 계속 곱씹는다. 가족들은 종내에는 싸웠고 중심엔 거의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기억하기로 아버지에게는 장남이라는 특권 의식이 있어서 모든 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냈다. 일년에 한두 번 보는 조카-내 고종사촌형-에게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핀컬 파마를 했다며 심하게 나무랐다.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와 싸우고 그대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짧은 칼럼이고 최대한 순한 맛으로 썼다. 차례나 제사 문제는 진짜 간단하다. 그렇게 유지하고 싶으면 남자들이 음식해서 지내면 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조리도 배우고 매우 좋지 않을까? 걱정 마시라, 나는 그 명절 음식을 독학으로 배워서 다 할 줄 안다. 십여 년 전 설에 어머니가 힘드시니 먹을 걸 좀 해오라고 그래서 새벽 세 시까지 전 부치고 갈비찜 만들고 잡채 버무려서 본가에 가지고 내려갔더니 ‘늦게 와서 올라갈 때 차 막히게 생겼다’는 형의 불평을 듣고 이후 명절 음식은 절대 만들어 먹지 않는 사람, 그게 나다.